경제를 얘기할 때 모두 고유가를 화제에 올린다. 두바이유 가격은 지난 2월23일께 배럴당 120달러를 돌파한 이후 현재까지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국내 보통휘발유의 평균 가격 역시 지난 2월27일 ℓ당 2000원을 넘어선 이후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최근의 고유가 상황이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는 점이다. 지난해 시작된 중동의 민주화 바람으로 급격하게 불안해진 중동의 석유생산은 최근 이란의 핵문제로 인해 크게 악화되었고 해결의 실마리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오히려 이란에 대한 이스라엘의 선제공격설이 제기되고 있고, 미국도 걸프만 해역에 병력을 증강하면서 긴장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매번 국제유가가 뛰고 국내 휘발유, 경유 등 석유제품 가격이 오를 때마다 반복되는 대표적인 논쟁 중 하나가 유류세 인하다. 최종 소비자가격의 46%가량을 차지하는 유류세 인하에 대한 소비자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원칙적으로 유류세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교통에너지환경세는 수급상 필요한 경우 30% 내에서 탄력적인 조정이 가능하다. 소비자 측면에서 현재의 고유가 상황은 조정이 가능한 경우에 해당된다. 여러 소비자단체들은 이미 유류세 인하에 대한 필요성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고, 한국납세자연맹은 유류세 인하를 위한 100만명 서명운동에까지 나섰다.

반면, 정부차원에서는 여전히 유류세 인하를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두바이유가 배럴당 130달러를 영업일 기준으로 5일 이상 넘게 되면 고려해보겠다고 설명하고 있으나, 이때도 유류세 인하보다는 특정 계층에 대한 선별적 지원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유류세 인하로 인한 소비자들의 체감효과가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일시적인 유류세 인하보다는 유통시장 개선을 통한 장기적인 가격인하를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사실 정부 입장에서 유류세 인하는 그리 자주 쓸 수 있는 카드가 아니다. 장기적인 고유가 상황에 대응해야 하는데, 섣불리 유류세 인하를 추진했다가 고유가가 고착화되는 상황이 발생하면 물가안정을 위해 쓸 수 있는 핵심적인 카드가 없어지는 셈이 된다. 그러므로 유류세 인하에 신중한 정부의 모습이 이해 안 되는 것도 아니다.

좀 더 들여다 보면 정부가 내놓을 수 있는 다른 카드가 있다. 바로 수입 원유에 붙는 관세의 인하다. 관세인하는 단기적으로 휘발유, 경유와 같은 수송용 유류에 대한 유류세 인하보다 더 중요하게 검토돼야 할 내용이다.

원유에 대한 수입관세는 2001년 이후 할당관세 1%를 유지해 왔으나 2009년 3월 3%로 인상된 뒤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고유가 시대로 향하고 있는 지금, 유류세 인하 논란에 앞서 3%의 원유 관세 인하를 먼저 추진할 필요가 있다.

원유 관세는 종가세다. 당연히 유가가 오를수록 세수는 늘어나게 된다. 고유가 상황인 최근 원유관세로 인한 세수는 이미 평균치를 훨씬 웃돌고 있다. 이미 기대한 세수를 확보한 상황에서 정부는 관세율을 낮추지 못할 이유가 없다. 이를 통해 ℓ당 몇십원이라도 소비자의 유가 부담을 덜고, 물가를 조금이라도 안정시키는 것이 국가경제에 도움이 되는 일일 것이다.

원유 관세 인하가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석유가 다양한 산업의 기초 원자재로 쓰이고 있다는 점이다. 일반 소비자들이 많이 사용하는 휘발유 등 수송용 유류는 원유를 수입해 생산하는 다양한 석유제품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석유화학제품을 포함해 엄청나게 많은 제품들이 석유를 이용해 생산되고 있다. 이와 같은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들에는 지금 관세 인하로 인한 비용 절감이 절실할 것이다.

일본 중국 대만 유럽연합(EU) 등이 원유를 기초원자재로 인식하고 국가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무관세를 적용하고 있다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는 고유가 상황에서 기업들의 국제 경쟁력 유지를 위해서라도 관세 인하는 선택이 아닌 필수 사항이다.

김형건 < 대구대 경제학 교수 kimhyunggun@hot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