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르지 않는다. 싸구려 포퓰리즘이 어떤 파국을 예비하고 있는지. 그러나 아무도 이 황당한 거짓말 경연을 멈추지 못한다. 정치가 뿜어내는 독소에 마비된 탓이다. 이미 경고는 넘치다 못해 짜증이 날 정도다. 엊그제 한국제도학회와 포퓰리즘 대책위원회가 가졌던 총선공약 토론회도 그랬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의 허무한 공약들을 검토하는 토론자들은 이 짓을 계속해야 하는지를 푸념할 정도였다.

이미 역사적 경험도 쌓여있다. 천문학적인 복지재원을 1% 부자와 대기업 증세로 조달하겠다는 반시장 발상의 결과 말이다. 1960년대 영국과 1970년대 독일이 겪었던 장기 저성장과 경제위기를 재연하려는 허망한 노력일 뿐이라는 결론들이 도출되었다.

복지를 경쟁하기는 정부도 마찬가지다. 이명박 정부는 동반성장론의 유혹에 지금도 시달리고 있지만 표면상으로는 반 포퓰리즘의 간판을 흔들고 있다. 정부의 분석에 따르면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제시하는 복지공약을 이행하려면 5년간 340조원의 재정을 쏟아부어야 한다. 국내 재정 형편상 도저히 감당이 안 된다는 얘기다. 새누리당은 진품약속(진심을 품은 약속), 민주당은 유쾌한 정책 반란이라며 유권자를 현혹하고 있다. 모두가 자신은 진짜인 것처럼 주장하지만 온통 공짜 일변도요, 입만 열고 있으면 밥을 먹여주겠다는 퍼주기 대책 일색이다.

그렇게 한국은 머지않아 천국의 문을 열고 들어서게 된다. 민주당이 무상급식 무상보육 무상의료 같은 공짜시리즈에다 반값등록금, 기초 노령연금 및 장애인 연금 확대 등을 내거는 데 대해 새누리당이 양육수당 및 장기요양보험 확대, 비정규직 근절, 사병 월급 인상, 정년 연장 등으로 맞대응하는 식이다. 지속성은커녕 실현 가능성조차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경제원칙을 무시하는 공약일수록 더욱 그렇다. 한국경제연구원이 구체성, 실현가능성, 합리성, 효율성 등 네 가지 기준으로 양당의 경제공약들을 평가한 결과 보통 수준(7점 만점에 4점)을 상회하는 정책은 극소수여서 그야말로 공약(空約)에 그칠 것으로 분석됐다.

게다가 정치권의 경제정책 혹은 기업정책 관련 공약들은 징벌적 차원을 넘어 기업을 해체하고 시장을 깨자는 파괴적인 선전구호로 가득하다. 이미 실효가 없어 폐지됐던 출자총액제 재도입을 비롯 순환출자 금지, 중소기업 적합업종 및 대형마트 규제 강화, 납품단가 인상 등에 이어 심지어 30대 그룹을 쪼개 3000개 중소기업을 만들겠다는 공약까지 나와 있다. 기업을 희생양으로 삼아 표를 얻겠다는 속셈이다. 최근 5개 경제단체장들이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을 향해 포퓰리즘 공약을 남발하지 말고 대기업에 대한 근거 없는 비판을 자제해달라는 성명서를 이례적으로 발표한 것도 반시장·반기업 정서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경제계의 인식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공짜점심에는 당연히 혹독한 대가가 따르게 마련이다. 유럽은 일찍이 천국으로 만들겠다는 허황된 복지병으로 경제를 망쳤던 쓰라린 경험을 했다. 그리고 보편적 복지라는 언어의 유희를 버린 지 오래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보장해준다던 영국이 그렇고, 복지주의자들의 이상향이던 스웨덴 역시 지금은 스스로 더 이상 복지국가라고 부르지 말라고 손사래를 치는 상황이다. 미국이 부자증세를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지는 와중에서도 기업에 대해 법인세를 대폭 낮춰주기로 방침을 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미 한국의 지자체들도 무상급식 무상보육에 벌써 돈이 떨어져 오는 6월 이후엔 못한다고 비명을 지르는 형국이다. 선거 때 공짜복지를 공약하고 당선됐던 지자체장들이었다. 그들의 뻔뻔스런 얼굴이 황당하다. 한국 민주주의의 갈림길이다. 질서정연한 서구형 민주주의와 대중주의에 빠진 길거리 민주주의 가운데 어느 쪽으로 가는가 하는 문제다. 총선은 대중주의의 제물을 필요로 하는 것 같다. 그러나 포퓰리즘은 반드시 시장의 복수를 초래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유럽의 경험이 그렇다. 정치는 너무 쉽게 이 교훈을 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