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석 대표 "일자리가 없다고요? 찾아보긴 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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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각네야채가게' 이영석 대표, 부산서 CJ '꿈지기' 강연
“일자리가 없다고요? 정말로 찾아보셨나요? 세상에 널린 게 일자리예요. ‘주제’ 파악이 먼저입니다.”
이영석 총각네야채가게 대표(44·사진)가 작심한 듯 ‘쓴소리’를 쏟아냈다. 13일 부산 CGV센텀시티에서 열린 CJ ‘꿈지기 사절단’ 특별강연에서다. ‘희망 전도사’의 희망 섞인 메시지를 기대했던 객석의 2030세대 청중은 잠시 웅성거리더니 이어지는 이 대표의 말에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도 이런 얘기를 해주는 사람이 없어요. 정치인도 교수들도 허울 좋은 복지얘기나 하지요.” 그는 목소리를 높였다. “처음 시작하는 일자리의 등급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게 무엇이든 절실함을 갖고 몰입하다 보면 그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습니다.”
‘넘치는 열정으로, 스마일 에너지를 선사하다’라는 주제로 강연에 나선 이 대표는 17년 전 오징어를 파는 행상 조수로 출발해 34개의 점포를 둔 ‘야채기업’ 대표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공개했다. 1호점인 대치동(서울) 강남점은 현재 1200명의 고객에게 매일 5t에 달하는 과일과 야채를 판매하고 있다.
이 대표는 아홉살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사업 부도로 인한 충격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그때부터 우유배달에 나섰다. 어머니를 볼 때마다 눈물이 났지만 울지 않았다고 했다. “네가 눈물을 보이면 어머니는 가슴으로 우신다”는 형의 말에 울 수가 없었다. 눈물 대신 절실함을 가슴에 품었다고 이 대표는 전했다. 대학 졸업 뒤 기획사에 취직했지만 틀 속에 갖힌 듯한 직장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퇴사, ‘장사꾼’의 길을 택했다.
이 대표는 “야채장사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고 말했다. 밑천이 얼마 없었던 데다 하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야채 쪽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대신 “성공해야 한다는 절박감을 갖고 종횡무진 뛰었다”고 말했다. “절박감 다음엔 행동이 뒤따라야지요. 세상은 행동하는 사람이 바꾸는 겁니다.” 그는 객석을 향해 파이팅을 주문했다.
창업 14년 만에 34호점을 낸 총각네야채가게의 독특한 기업시스템도 알려줬다. “일선 점포에서 2년만 근무하면 독립할 수 있도록 자금을 지원해줍니다. 지점을 낸 후배들 중엔 억대 연봉자도 제법 있지요.” 그런데도 중간에 포기하는 후배들이 있어 아쉽다고 했다. “20~30대에 2년이란 시간은 전체 인생에 있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 정도의 노력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없습니다.”
1993년 무일푼으로 1년 넘게 오징어 트럭 행상을 따라다니며 모은 250만원으로 트럭 한 대를 구입해 야채 행상을 시작했던 이 대표. 5년 후인 1998년, 트럭 행상으로 번 돈으로 대치동에 59㎡(18평) 야채가게 ‘젊음 이곳에…자연의 모든 것’(일명 ‘총각네 야채가게’)을 열어 개업 첫해 6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절실함을 갖고 열정으로 일하라”고 강조하는 그는 지금도 매일 새벽 3시면 가락시장으로 향한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
이영석 총각네야채가게 대표(44·사진)가 작심한 듯 ‘쓴소리’를 쏟아냈다. 13일 부산 CGV센텀시티에서 열린 CJ ‘꿈지기 사절단’ 특별강연에서다. ‘희망 전도사’의 희망 섞인 메시지를 기대했던 객석의 2030세대 청중은 잠시 웅성거리더니 이어지는 이 대표의 말에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넘치는 열정으로, 스마일 에너지를 선사하다’라는 주제로 강연에 나선 이 대표는 17년 전 오징어를 파는 행상 조수로 출발해 34개의 점포를 둔 ‘야채기업’ 대표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공개했다. 1호점인 대치동(서울) 강남점은 현재 1200명의 고객에게 매일 5t에 달하는 과일과 야채를 판매하고 있다.
이 대표는 아홉살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사업 부도로 인한 충격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그때부터 우유배달에 나섰다. 어머니를 볼 때마다 눈물이 났지만 울지 않았다고 했다. “네가 눈물을 보이면 어머니는 가슴으로 우신다”는 형의 말에 울 수가 없었다. 눈물 대신 절실함을 가슴에 품었다고 이 대표는 전했다. 대학 졸업 뒤 기획사에 취직했지만 틀 속에 갖힌 듯한 직장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퇴사, ‘장사꾼’의 길을 택했다.
창업 14년 만에 34호점을 낸 총각네야채가게의 독특한 기업시스템도 알려줬다. “일선 점포에서 2년만 근무하면 독립할 수 있도록 자금을 지원해줍니다. 지점을 낸 후배들 중엔 억대 연봉자도 제법 있지요.” 그런데도 중간에 포기하는 후배들이 있어 아쉽다고 했다. “20~30대에 2년이란 시간은 전체 인생에 있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 정도의 노력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없습니다.”
1993년 무일푼으로 1년 넘게 오징어 트럭 행상을 따라다니며 모은 250만원으로 트럭 한 대를 구입해 야채 행상을 시작했던 이 대표. 5년 후인 1998년, 트럭 행상으로 번 돈으로 대치동에 59㎡(18평) 야채가게 ‘젊음 이곳에…자연의 모든 것’(일명 ‘총각네 야채가게’)을 열어 개업 첫해 6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절실함을 갖고 열정으로 일하라”고 강조하는 그는 지금도 매일 새벽 3시면 가락시장으로 향한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