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없었다. 반칙이라는 말도 듣기 싫었다.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일까. 가슴 깊이 차오르는 무언가를 애써 짓눌러봐도 하루하루 늘어가는 상심을 다잡기는 역부족이었다.

2000년, 연예계를 떠난 후 보란 듯이 시작한 광고대행사가 3년을 못 넘기고 위기에 직면했다. 90년대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던 청춘 드라마 '마지막 승부'의 히어로 손지창. 언제부턴가 그는 연예인 손지창이 아닌 한 기업의 '대표' 손지창으로 불리고 있다.

"저요? 영업사원이자 현장스텝 이죠." 베니카(VENICA)라는 회사로 마이스(MICE)업계에 주목 받는 CEO로 돌아온 손지창(43.사진)의 말이다.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에서 진솔한 이야기는 이어졌다.


올해로 13년째 '베니카'라는 회사를 이끌고 있는데, 어려운 점은 없었는지.

연예계를 떠나면서 2000년대 붐이었던 벤처기업의 간접홍보를 전문으로 하는 PPL(Product Placement)대행사를 시작했어요. 주로 나이키, 모토로라, 코카콜라와 같은 다국적 기업들과 스타마케팅을 도맡았죠. 그러던 중 2003년 같이 일하던 직원들이 한꺼번에 떠나면서 위기를 겪었습니다(웃음).

결국 그게 약이었던 것 같아요. 살아온 삶과 세상의 이치를 새삼 되새겨볼 시간을 가진 셈이었죠. 당시만해도 PPL은 불법광고였기 때문에 활동에 제약도 있었고 연예인 출신이라는 선입견으로 곱지 않게 보시는 분들도 많았거든요. 무엇보다 사람들로부터 받은 상처가 커서 "이 일을 계속해야 하나"라는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위기와 고민의 순간 희망을 찾은 것도 사람 때문이었어요. 사업을 접어야 하나 고민을 거듭하던 중 우연히 한 친구를 만났는데 당시에 삼성전자 애니콜 프로모션을 총괄하던 친구였죠.

지금도 함께하고 있는 그 친구와 "다시 해보자"고 맘을 추슬렀어요. 아주 허름한 사무실을 얻었고 다시 시작한 게 10년이나 됐네요. 그 친구를 통해 이벤트를 알게 됐고, 대기업들이 문화마케팅 차원에서 추진하던 고객 프로모션 등을 수행하면서 내공을 쌓게 됐습니다.


회사 이름이 '베니카'인데, 활동중인 연예인 농구단과도 같다.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

솔직히 말해 사업을 처음 시작하면서 당시 IT붐과 도메인 선점 등을 염두하고 만든 이름이에요. 뭐 대단한 의미는 없다는 얘기죠(웃음). 특별한 의미보다는 벤처를 상징하는 V자로 시작하는 단어를 찾던 중 웬만한 단어들은 이미 도메인 등록이 다된 상태였거든요.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떴는데 불현듯 떠오른 단어가 있었어요. 그게 베니카였죠. 다행히 글로벌 도메인도 남아있었고 발음하기도 쉬워서 결정하게 됐습니다.


포상관광과 미팅, 기업회의 등으로 마이스(MICE)업계에서 주목 받고 있는데, 진출 계기가 무엇인지.

마이스 분야에 진출한 것은 2006년이었습니다. 당시 세계 최대의 제약회사인 독일의 바이엘(Bayer) 차이나가 제주도에서 1천6백 명 규모의 포상관광(Incentive Trip) 프로그램을 운영 할 기획사를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 무조건 도전해보자고 생각했어요.

정말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상한 자신감이 있었죠. 바이엘 측을 찾아가 프레젠테이션 할 수 있는 기회만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이미 모 여행사가 내정되어 있다는 소문도 있어 단순히 들러리로 전락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계란으로 바위를 친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준비했죠.

프로그램은 자신 있었어요. 지금도 우리회사의 가장 큰 장점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하거든요. 신라호텔, 롯데호텔, 하얏트 등 좋다는 호텔은 직접 다 찾아갔어요. 눈으로 직접 컨디션을 확인하자는 차원도 있었지만 합리적인 가격도 중요한 결정요인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확보한 숙소와 이벤트 회사의 장점을 발휘한 차별화된 프로그램이 긍정적인 평가를 받게 되어 결국엔 기존에 내정되었다던 여행사에서 프로젝트 공동진행을 제안해 왔습니다.

마이스 포상관광의 첫 성과였습니다. 그 행사를 시작으로 현재는 융합관광 외에 포스코, 롯데카드, NH카드 등 기업회의와 다양한 이벤트를 통해 마이스 사업을 진행하고 있답니다.

연예인이 사업한다고 하면 '얼굴마담'쯤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회사에서 본인의 가장 큰 역할은.

명함은 대표이사로 되어있지만 저는 베니카의 영업사원이자, 프로그램 기획자, 협상가이자, 현장 스텝입니다. 기업을 만나 설명하고, 독특한 아이템을 발굴하고 기획해서 제안하고, 현장에서 다시 확인하고, 행사장에서는 발로 뛰는 일꾼?(웃음)이 제 역할인 것 같아요. 알만한 사람들은 '멀티플레이어'라고 한답니다.

한번은 제가 행사장에서 맥주 캔을 일일이 세고 정산에도 참여하니 "요즘 많이 어려우신 가봐요" 라며 안쓰러운 눈길로 안부를 묻는 분도 계셨다(웃음).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있어 '베니카'만의 경쟁력이 있을것 같은데.

국내행사는 물론 해외행사도 현지 가이드만 빼고는 호텔이든, 행사장이든 기타 현지 프로그램에 대한 계약은 중간 벤더(유통망)나 여행사 등 끼지 않고 1:1로 직접 체결합니다. 돈을 더 줘서라도 참가자에게 프로그램에 대한 가치를 평가 받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기존 여행사나 현지에서 운영되고 있는 기존 프로그램을 단순 취합해서 제시하기 보다는 베니카만의 프로그램을 제공하기 위해 현장답사는 국내, 해외를 막론하고 제가 직접 가봅니다.

현지에서 고객의 입장에서 먼저 보고 느낀 후 갖게 되는 확신이 있어야만 베니카만의 프로그램으로 녹아낼 수 있으니까요. 남들이 보기에는 그럴 듯 해 보이고 편하고 좋아 보일 수 있지만 ‘백조의 호수’같은 거죠.

마이스 기획은 누군가를 빛나게 하는 일이지 절대 자신이 빛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한경닷컴 유정우 기자 seeyo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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