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증비용이 제조원가의 10%…절차만 줄여도 단가 확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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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企 '인증 전봇대' 뿌리뽑자 - (1) 기업부담 얼마나 크나 - (下) 뒷짐 진 정부
두루마리 화장지, 길이별로 Q마크 받아야
매출 40억 중소기업, 인증 따는데 2억원 써
두루마리 화장지, 길이별로 Q마크 받아야
매출 40억 중소기업, 인증 따는데 2억원 써
비대해지는 인증산업이 중소기업의 허리를 휘게 하고 있다. 준조세나 다름없다는 게 중소기업인들의 하소연이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비슷비슷한 인증이 불필요한 줄 알면서도 하나라도 더 따야 공공 조달이나 대기업 납품 경쟁에서 이길 수 있기 때문에 안 딸 수 없는 게 현실”이라며 “인증은 꼭 필요한 최소한의 절차가 아니라 많이 하면 할수록 좋은 마케팅 수단이 돼버렸다”고 말했다.
○“인증은 준조세”
화장지업체 동방제지의 정인태 대표 역시 인증 얘기만 나오면 알레르기 반응이다. 두루마리 화장지와 페이퍼타월, 냅킨 등을 생산하는 이 회사는 지난해 품질보증 ‘Q마크’와 ‘환경표지인증’ 등을 받으면서 똑같은 제품인데도 50m, 70m, 300m, 700m 등 길이별로 따로 검사를 받아야 했다.
정 대표는 “길이별로 검사를 받아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데도 규정을 들어 시험·검사비만 3~4배 넘게 더 챙겨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50종류의 LED 조명제품을 생산하는 S사는 지난해 조명 판매에 필요한 KS(한국산업표준) KC(국가통합인증마크) 고효율에너지기자재인증 등 9종의 인증을 따는 데 거의 5억원을 썼다. 이 회사의 작년 매출은 200억원. 제품 종류별로, 같은 제품이라도 전기 용량이 다르면 따로 인증을 따야 하기 때문에 회사에서 받은 인증서만 100개에 육박한다. 그는 회사 로비에 붙여놓은 인증서를 하나씩 소개해줬다.
회사 관계자는 “어떤 제품은 원가의 30%가 인증비용”이라며 “인증을 따고 나니 회사가 흔들릴 지경”이라고 말했다.
○“인증 유지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인증을 취득하고 유지하는 데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드는 것도 문제다. S사는 KS 인증을 따는 데 신청 전 사전심사에 104일, 공장심사에 2개월, 제품심사에 2개월 등 총 8개월을 소비했다.
다른 전기제품을 생산하는 지방의 W사는 3개 품목, 33개 모델을 판매하기 위해 전기용품안전인증과 KS, ISO9001, ISO14001, 고효율에너지기자재 인증, V체크마크, 친환경제품인증, 조달 우수제품인증, 우수단체표준, 방폭등기구인증, 성능인증 등 10가지 인증을 취득했다. 이들 인증을 따는 데 든 돈만 총 2억1600만원. 연간 매출(40억원)의 5%다. 인증을 땄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인증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매년 받는 교육과 검사에 또 5000만원 넘는 돈이 들어간다. 2~3년마다 인증을 재발급받을 때는 다시 취득 때와 똑같은 돈이 들어간다.
이 회사 L대표는 “인증을 따고 유지하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이라고 말했다.
○불필요한 인증 정리해야
중소기업옴부즈만실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중소기업 중 매출의 3% 이상을 검사·인증 비용으로 지출하는 기업이 전체의 8.6%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3%를 쓰는 기업이 43.5%, 1% 미만은 47.8%였다.
김문겸 중소기업옴부즈만은 “인증이 중소기업의 시장 진출을 도와야 하는데 수많은 인증을 따느라 되레 기업들이 시간과 자금을 소모하며 허덕이고 있다”면서 “중소기업 활성화 차원에서라도 범정부 차원의 인증시장 정리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영찬 기술표준원 인증산업진흥과장은 “국가가 어떤 제도나 기술을 시행할 때 의무적으로 인증을 받도록 하고 있다”며 “소비자나 기업 입장에서 혼란스러운 건 계속 통일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박수진/은정진 기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