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한 전직 고위 관료는 최근 서규용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을 만나 “일본의 수산업은 과도한 규제로 망했다”며 “한국은 일본의 전철을 밟지 말라”고 당부했다. 실제 19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일본은 연간 1280만t의 수산물을 생산하는 세계 1위 수산국이었다. 그러나 최근 생산량이 500만t에 그치면서 7위로 밀려나 국내 소비량의 상당 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영세 어민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수산업에 기업 자본과 우수한 인재들의 유입을 차단한 결과였다.

○양식장 무한대로 확대 가능

정부가 일본을 ‘반면교사’로 삼아 1953년 연근해어업법 도입 이후 60년 만에 수산업 규제를 대대적으로 손질하기로 했다. 대기업의 양식업 진출이 허용되고 도시민들은 어촌에 내려가 손쉽게 수산업을 할 수 있게 된다.

농식품부는 16일 수산업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어업관리 제도 개선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사조대림 동원수산 등 수산 대기업뿐만 아니라 일반 대기업도 양식업을 할 수 있게 된다. 양식 품목에 대한 규제도 풀린다. 초기 시설 투자비가 많이 드는 참치 다금바리 등 외해(해안과 접해 있지 않고 수심 35m 이상인 지역) 양식 품목을 시작으로 광어 우럭 등 양식이 일반화돼 있는 품목들로 단계적으로 확대된다.

외해 양식장 면적 제한도 전면 철폐돼 기업형 양식장들이 속속 들어설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는 규모가 60㏊ 이하로 제한돼 사업적 측면에서 볼 때 ‘규모의 경제’ 효과를 얻을 수 없었다.

○누구나 자유롭게 어업 진출

수산업으로 신규 인력을 끌어들이기 위한 방안도 나왔다. 정부는 양식 기술력을 갖춘 인력에는 면허를 우선적으로 주기로 했다. 현재 수산업 면허는 사실상 총량이 정해져 있고 신규로 얻기도 어렵다. 일단 면허를 취득한 기존 어업인들을 중심으로 10년 주기로 면허를 재발급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불법 어업을 해도 면허 재취득엔 별다른 제재가 없었다. 이제 이 같은 진입장벽은 존재하기가 어렵게 됐다는 것이 농식품부 측 설명이다.

도시민들의 귀어(歸漁)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는 마을 어장에서 어업활동을 하려면 어촌계 계원들의 동의를 일일이 받아야 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런 절차를 밟지 않아도 된다.

정부는 또 자원이 고갈된 업종 등에 대해선 직권으로 어선을 줄여 수산 자원을 보호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감척은 어업인이 자원할 때만 가능했다. 기존 어업인들의 의무는 보다 강화된다. 양식장을 부실하게 관리하거나 상습적으로 불법 어업을 하면 퇴출된다.

○시행까지는 ‘산 넘어 산’

전문가들은 세계 수산 생산량 1위인 중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앞두고 이번 규제 완화가 국내 수산업의 경쟁력을 높여줄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김정봉 한국해양수산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수산업은 정부 규제로 너무 영세하다”며 “FTA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선 규모화·기업화를 통해 수산 자본을 축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규제가 풀릴 때까지 넘어야 할 산도 많다. 우선 어업인들의 큰 반발이 예상된다. 기업들의 반응도 아직은 시큰둥하다. 양식사업의 수익성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정복철 농식품부 어업관리관(국장)은 “올해 안에 필요한 법들을 개정하는 게 목표”라며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겠다”고 말했다.


◆ 어촌계

수협중앙회 조합원들이 마을 단위로 만든 자발적인 조직이다. 마을 어장에서 수산업을 할 수 있는 면허를 공동 소유한다. 당초에는 계원들이 공동으로 수산활동을 한 뒤 공동으로 판매하고 소득을 나누는 형태로 운영됐다. 최근에는 부과금을 낸 지분만큼 어장에서 어업을 하면서 각자 소득을 올리는 곳이 많다.

서보미 기자 bm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