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불광동에 사는 김철호 씨(39)는 연초 아파트 전세를 재계약했다.

전용 85㎡인 이 집의 2년 전 전세 보증금은 2억2000만원이었다. 그 새 4000만원이나 올라 있었다. 집주인은 주변 전세 보증금 인상분만큼 올려주거나 인상분만큼을 월세로 전환하는 반전세를 요구했다. 목돈이 없어 보증금을 1000만원 올리고, 나머지를 월세(20만원)로 내기로 했다.

작년 전세난이 전국을 휩쓸면서 서민들의 주거 불안이 사회문제로까지 대두됐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집주인들은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일각에서는 월세 시대가 본격화됐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전세 시장이 유지될까, 아니면 월세가 대세로 자리 잡을까.


◆반전세는 과도기적 임대 형태

주택 임대 형태는 크게 순수월세, 보증부 월세(사글세), 반전세, 전세 등으로 나눌 수 있다. 흔히 전세를 제외한 나머지를 월세 범주에 넣기도 한다.

순수월세는 보증금 없이 매월 약정액을 정해진 날에 주는 형태다. 고시원 원룸 등에서 통용되지만 순수월세 비중은 미미하다.

보증부 월세는 보증금과 월 임대료 형태로 구성된다. 예를 들어 보증금 1000만원에 월 50만원의 임대료를 내는 식이다. 소형 오피스텔과 도시형 생활주택, 전용 60㎡ 이하 아파트 등에 주로 적용된다.

반전세는 부동산 시장의 침체가 이어지는 가운데 임대인들이 전세보증금 증가분을 월세로 전환하면서 생긴 임대 형태다. 전세로 살고 있는 세입자에게 보증금 1000만원을 올리는 대신 월세로 10만원을 받는 경우다.

전세는 2년간 계약을 통해 목돈(전세금)을 집주인에게 빌려주고 대신 집을 빌리는 임대 형태다. 2010년부터 전·월셋값 상승세가 이어지면서 전세금 상승분을 반전세 형태로 받는 사례가 늘었다. 그래서 반전세는 월세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임대 형태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전세 유지 vs 월세 전환

지난해까지 서울과 수도권에서 입주 물량이 감소하고 1~2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주택이 전반적으로 부족했다. 전·월세난이 일어난 원인이 수요에 비해 공급이 달렸기 때문이란 얘기다. 서울 강남에서 경기도 분당과 용인 등으로 전세 수요가 확산되고 아파트 거주자들이 연립이나 다세대주택, 도시형 생활주택 등으로 옮겨가는 현상도 벌어졌다. 전세난민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작년 여름까지는 전세난이 심했다.

이 여파로 전세가 반전세나 월세로 전환되는 사례가 많이 발생했다.

부동산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앞으로 전세 시장의 힘이 지속될지, 아니면 월세 시장이 더 확대될지를 두고 의견이 엇갈린다. 지난해 5월 국민은행이 집계한 전세 및 월세(반전세 포함) 비중은 55% 대 45%로 전세 비중이 약간 높았다.

비교적 짧은 기간 내 월세로 전환이 이뤄질 것이라고 주장하는 월세론자들은 장기적으로 주택 가격이 안정되고 전세를 월세로 전환해도 5% 안팎의 수익률을 거둘 수 있어 집주인들이 월세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한국에만 존재하는 전세 제도가 약화되고 저금리 시대에 금리 이상의 수익률을 거둘 수 있는 월세 전환이 지속적으로 이뤄질 것이란 얘기다. 박상언 유엔알컨설팅 대표는 “가격 상승 기대감이 낮아 전세를 안고 주택을 구입하는 수요가 크게 줄었다”며 “매매가 대비 전세 비중이 높은 곳은 월세로 전환해도 연 4% 이상의 수익을 거둘 수 있어 집주인들이 월세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임대사업 활성화를 추진하는 것도 월세 시장이 정착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양지영 리얼투데이 팀장은 “임대사업 기준이 5가구에서 1가구로 줄고 오피스텔도 매입임대주택 등록이 가능해지는 등 전반적으로 임대사업을 활성화하는 분위기”라며 “임대사업을 염두에 둔 사람들은 당연히 월세로 안정적인 수익을 거두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전세 유지론자들은 장기적으로는 월세가 확대되더라도 전세시장이 갑자기 움츠러들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전세 유지론자들은 지난해까지 공급자가 우월한 위치에 선 시장이어서 반전세 등 월세 움직임이 일부에서 나타났다고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도시형 생활주택이 8만여 가구 공급되는 등 소형주택 부족이 해소되는 과정에 있어 집주인과 세입자의 지위가 균형을 찾아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세입자에게 월세는 일종의 열등재여서 전세난이 심하지 않으면 굳이 월세를 찾을 이유가 없다는 게 전세론자들의 주장이다. 결혼을 해서 새로운 가정을 이룰 때 부모들이 전세보증금을 대주는 습관도 전세시장 유지를 뒷받침하고 있다. 박 수석팀장은 “서울 강남 등 일부 지역에는 역전세난이 나타나는 등 전세 시장이 안정을 찾으면서 월세 전환 속도가 늦춰지고 있다”며 “소형 주택 시장이 자리를 잡고 일부에서는 공실도 발생하고 있어 단기간 월세가 확산되기는 힘들 것”으로 내다봤다.

이영호 닥터아파트 리서치연구센터 소장도 “나이가 든 집주인들이 연금형태의 월세를 원하는 부분도 있지만 관리가 힘들어 전세로 돌리기도 한다”며 “서울 강남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임차인들이 ‘왜 월세를 주고 살아야 하느냐’며 반전세에 강한 거부감을 보이는 것도 집주인들이 전세를 유지하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이런 이유때문에 국내 임대차 시장에서 전셋값이 급등할 때 반짝 월세화가 진전되지만 전셋값이 안정되면 다시 전세가 늘어나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주택 임대시장의 변수들

문가들은 중장기적으로 저금리 시대 지속여부, 집값 동향 등 다양한 변수들이 월세화 진전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전망한다.

저금리 시대 고착화는 월세화를 부추기는 요소다. 저금리는 곧 목표 임대수익률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금리에 ‘+α’를 요구하는 게 임대수익률이다. 집값 상승을 기대하기 어려워진 점도 월세화를 진전시킬 것으로 보인다. 집 주인들이 시세 차익 대신 임대수익을 겨양하는 쪽으로 전략을 바꿀 가능성이 높아서다.

집주인과 세입자 중 누가 더 교섭력(필요성)이 높으냐도 변수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으로 전국과 서울의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중은 각각 54.85%, 48.37%다. 하지만 오산 평택 등 수도권 일부지역과 대전 광주 제주 등 지방은 전세가 비중이 70%를 웃돌고 있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 수석팀장은 “주거 형태가 전세와 월세로 나눠지는 건 집주인과 세입자들이 주택 시장과 금리, 경제 전망을 어떻게 내다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며 “가구 구성의 변화와 소득 수준 향상, 주택 재테크 기대감 저하 등이 복합적으로 맞물려 주택 임대시장의 방향이 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수 기자 tr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