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봄비가 내렸던 지난 25일 오후 1시 경기도 용인 시내에서 10여㎞ 떨어진 이동면 천리 C곰사육농장. 23일 등산객을 물어뜯고 달아났다가 경찰에 사살된 40㎏짜리 반달곰이 사육됐던 곳이다. 600㎡ 남짓한 곰농장에서 사육되는 반달곰은 102마리에 달했다. 반달곰들은 너비 1.5m, 높이 2.5m 정도의 철제 우리 안에 한 마리씩 갇힌 채 울부짖고 있었다.

우리 안팎에 나뒹구는 배설물에서 나는 악취로 숨을 쉬기 힘들 정도였다. 농장 안쪽으로 발길을 돌리자 우리 속에 갇혀 있던 새끼곰들이 부대끼며 싸우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피부병에 걸린 듯 몸 곳곳에 털도 빠져 있었다. 조심스럽게 다가서자 먹이를 달라는 듯 아우성을 쳐댔다.

농장주인 K씨(64)는 인터넷에 홈페이지까지 갖춰놓고 버젓이 ‘반달곰’을 팔고 있었다. 현행법상 태어난 지 10년이 지난 곰만 도축할 수 있으며 도축하더라도 식용이 아닌 ‘약재’로만 쓸 수 있지만 깡그리 무시했다. K씨는 2003년 오리·사슴 축사, 사료창고 등 농장 안에 있는 7개동에 대한 건축허가를 받았지만 여지껏 사용승인은 받지 않았다. 무허가 건물에서 곰을 사육하는 것도 모자라 불법으로 ‘곰 고기’까지 팔고 있는 것이다.

K씨의 농장은 외딴 섬처럼 고립돼 있고 간판도 없어 주민들도 곰 사육장의 존재를 자세히 알기 어려웠다. 기자와 동행한 동물보호연대 관계자는 “수도권에만 21곳에서 300여마리의 반달곰이 사육되고 있다”며 “엄연히 식용판매가 금지돼 있지만 많은 사육농장들은 돈을 벌려고 멸종위기종인 반달곰을 불법도축해 팔고 있다”고 우려했다.

○20만원이면 곰고기 ‘무한 리필’

본지가 국내 최대 규모인 C곰사육농장을 잠입취재한 결과 약용으로만 사용돼야 할 반달곰이 식용으로 팔리고 있었다. K씨는 곰뿐 아니라 사슴과 오리도 키우면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인기 메뉴는 1인당 300만원인 ‘반달곰 스페셜’.

반달곰 샤부샤부, 곰발바닥, 웅담으로 구성된 ‘세트 메뉴’다. 손님 7명(2100만원) 이상이 모여야 곰 한 마리를 도축한다. K씨는 “5일 전에만 예약하면 언제든지 음식을 제공할 수 있다”며 “가짜 음식이 아니란 점을 입증하려고 손님이 보는 앞에서 도축하기도 한다”고 강조했다.

종종 식당을 직접 찾아오는 손님도 받긴 하지만 철저히 예약제로 운영한다. K씨는 “1인당 20만원에 무한리필이 가능하다”며 “육질을 부드럽게 하려고 특제소스까지 개발했다”고 자랑했다. 그는 반달곰 스페셜 외에 5㏄짜리 병 2개에 담아 300만원에 파는 웅담, 피부염과 아토피에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웅지(곰 기름)로 만든 비누도 팔고 있었다.

농장 주변에는 제대로 된 울타리도 없었다. 농장에서 탈출한 반달곰이 주민들을 습격해도 속수무책인 상황이다. 환경부 산하 한강유역환경청 김대환 실무관은 “야생동식물보호법에 따라 웅담을 ‘약용’으로 판매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식용으로 파는 행위는 불법”이라며 “위반하면 과태료 부과 사항”이라고 경고했다.


○‘지리산 반달곰’은 보호…‘수입 반달곰’은 밀거래

멸종위기종인 반달곰이 어쩌다 이 지경에 처했을까. 처음 수입된 건 1970년대였다. 관람과 연구 목적으로 허용됐다. 수입곰을 사육해 재수출할 수 있도록 곰 사육이 합법화된 건 1981년. 일부 곰 사육자들이 웅담을 채취하는 게 언론에 보도되면서 야생동물보호론자들의 반발이 거세졌다.

곰 수입은 결국 1985년 7월 전면 중단됐다. 한국이 1993년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 가입하면서 반달곰 등을 포함한 모든 곰의 수출도 금지됐다. 곰 사육농가는 순식간에 수익원을 잃어버렸고 반달곰은 ‘애물단지’가 됐다.

문제는 이미 수입돼 국내 농장에서 사육돼온 곰이었다. 농림부에서 환경부로 관할권이 넘어간 뒤 사육곰의 처리는 법으로 엄격하게 제한됐다. 웅담 채취가 가능한 곰 연령이 ‘생후 10년 이상’으로 확정된 것도 이 즈음이다. 새로운 수익 창출 모델을 고심하던 농가는 불법인 걸 뻔히 알면서도 남몰래 곰을 도축하기 시작했다.

고기는 음식으로 만들어 팔았고 기름으로는 화장품을 만들었다. 이런 식으로 죽음을 기다리는 곰은 수도권 21곳 사육농가에 352마리가 있다. 전국적으로는 1140여마리의 곰이 이같이 사육되고 있다. 녹색연합 관계자는 “우리나라에서 서식해온 반달곰의 자연방목을 위해 정부가 소매를 걷고 나섰지만 한편에선 수입곰의 불법 밀거래가 횡행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환경부 뒤늦은 전수조사

불법 도축·유통을 막으려는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다. 홍희덕 통합진보당 의원은 지난해 6월 정부가 사육 곰을 매입해 민간 곰 사육을 근절시키는 내용의 ‘사육곰관리특별법’을 발의했다. 홍 의원은 “국내에서도 멸종위기종인 반달곰을 복원하고 있는 마당에 한쪽에서는 웅담을 채취하려고 사육을 하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역설했지만 개정안은 끝내 18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정부의 단속 손길도 ‘사육 곰’에게는 미치지 않는다. 주무 부처가 자주 바뀐 것도 문제였다. 현재 주무 부처는 환경부. 환경부 산하에서 수도권 지역 반달곰 사육 농가를 관할하는 한강유역환경청은 그러나 사육농가의 주소, 농장주, 개체 수, 연락처 이외에 어떤 정보도 갖고 있지 않았다.

2005년 사육곰 관리 지침을 만들어 개체별 관리카드를 작성하고 상·하반기 한 차례씩 현장 점검을 시행하고 있지만 실효성은 낮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곰의 탈출을 막기 위한 울타리 설치나 오·폐수 처리 규정은 아예 없다.

곰 사육농가관리지침이 있지만 이 역시 의무사항은 아니라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한강유역환경청 관계자는 “산림청에서 지방자치단체로 1999년에 업무가 이관됐다가 다시 2005년에 환경부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넘겨받은 자료가 많지 않다”고 해명했다.

환경부도 뒤늦게 대책 마련의 필요성은 인정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취재팀의 문제 제기에 “전국에 퍼져 있는 곰 사육농가에 대한 실태를 조사해 불법 도축이나 약용 이외의 사용을 근절할 수 있는 대책을 내놓을 방침”이라고 했다.

김우섭/이지훈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