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가 왜 안 살아나나 했더니….”

일본의 엥겔계수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소득 감소와 청년층 실업난이 원인이다. 엥겔계수는 가계의 총 소비지출액에서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중. 먹고 마시는 데 쓰는 돈이 많을수록 가계의 소비 여력은 줄어들어 내수침체 장기화의 주요인이 된다.

일본 총무성이 최근 발표한 가계 조사 통계를 보면, 작년 일본의 엥겔계수는 23.7%로 전년 대비 0.4%포인트 높아졌다. 제1차 오일쇼크를 겪었던 1974년에 전년 대비 0.7%포인트 오른 이후 가장 큰 상승폭이다.

일본의 엥겔계수는 선진국 가운데 이례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미국(7.2%) 독일(6.9%) 영국(11.4%) 등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10% 안팎에 불과하다. 한국의 엥겔계수도 14.2%로 일본보다 한참 낮다. 일본이 종종 ‘국가는 부자지만 국민은 그렇지 않다’는 평가를 듣는 이유다.

문제는 가뜩이나 높은 엥겔계수가 최근 들어 다시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는 것. 일본의 엥겔계수는 2차 대전 직후인 1946년 66.7%에 달했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 고도성장을 이뤄내면서 엥겔계수도 빠르게 하락했다. 1980년에는 28%로 떨어졌고 이후에도 소폭이지만 내림세를 지속했다. 전체적인 흐름이 바뀐 것은 자산 버블 붕괴의 후유증이 본격적으로 나타난 1990년대 후반부터. 엥겔계수가 거의 제자리걸음을 하다가 2005년(22.9%) 이후 다시 반등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기록한 23.7%는 1999년과 똑같은 수준. 12년 전으로 생활수준이 되돌아간 셈이다.

일반적인 국가들과 엥겔계수 상승 원인이 다르다는 것도 일본만의 고민이다. 선진국의 경우 대부분 소비자물가 상승이 엥겔계수를 밀어올리는 가장 큰 원인이다. 반면 일본은 매년 소비자물가가 하락하는 디플레이션 상태인데도 엥겔계수는 오름세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전 연령대 가운데 25~29세의 엥겔계수 상승폭이 0.9%포인트로 가장 컸다”며 “직장을 구하지 못했거나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난 것이 엥겔계수 악화의 주원인”이라고 진단했다.

◆ 엥겔계수

가계의 총지출액에서 식료품비가 얼마나 차지하는지를 백분율로 나타낸 지표. 독일의 통계학자 에른스트 엥겔이 1857년 벨기에 노동자들의 가계조사를 하면서 처음 사용했다. 소득이 적더라도 식료품비는 크게 줄일 수 없기 때문에 생활수준이 낮은 나라일수록 엥겔계수가 높은 것이 일반적이다.

도쿄=안재석 특파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