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들이 보신주의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참여해야만 제도의 의미를 살릴 수 있습니다.”

지난 2일부터 시행된 ‘적격기관투자자(QIB) 제도’가 유명무실해질 조짐을 보이자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이같이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QIB 시장은 자금 조달이 어려운 중소기업이 쉽게 회사채를 발행해 돈을 빌릴 수 있도록 한 제3의 채권시장을 말한다. 금투협의 프리본드에서 거래가 이뤄진다. 공시의무를 대폭 완화해 중소기업의 자금조달 기회를 확대한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하지만 아직까지 단 한 건의 거래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금투협은 QIB 시장이 활성화하지 못하는 원인으로 증권사들의 소극적인 태도를 꼽았다. 성장성 있는 중소기업을 발굴해 채권 발행을 장려하고 기관투자가의 투자를 이끌어내려는 의지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신용도가 높은 우량 채권에만 관심을 보인다는 지적도 내놨다.

하지만 QIB 제도를 뜯어보면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당장 수급이 구조적으로 맞지 않게 돼 있다. QIB 채권을 발행할 수 있는 기업은 총자산 5000억원 미만의 비상장법인이다. 이들 기업이 발행하는 채권은 신용등급 B급 수준의 전환사채(CB)나 신주인수권부사채(BW)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를 인수할 수 있는 QIB는 금융투자업자 은행 보험 펀드 연기금으로 한정돼 있다. 대개 AA급 이상 채권에만 투자하는 기관투자가들이다. A급 채권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 이들이 B급 채권 투자에 나설지 의문이다.

게다가 QIB 시장은 사모로 형성돼 있다. 공모채권에 투자하는 펀드는 참여할 수 없다. 고위험 채권 수요가 있는 저축은행 새마을금고 신협 등은 아예 QIB 대상에서 빠져 있다. 정책자금을 굴리는 정책금융공사 등도 참여하지 못한다.

지금까지 중소기업이 공모채권을 발행하기는 상당히 어려웠다. 그런 점에서 QIB 제도 도입은 의미있는 시도다. 이런 취지를 살리려면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총자산이 5000억원을 넘지만 공모채권 발행이 쉽지 않은 중소기업도 QIB 채권을 발행할 수 있도록 하고, 기관투자가의 참여 폭도 넓혀야 한다는 게 시장의 주문이다.

금투협이 이런 지적을 못들은 척 한 채 시간이 흐르면 제도가 정착될 것이라는 근거 없는 낙관론이나 ‘네 탓 공방’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김은정 증권부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