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한 ‘엄친아’도 드문 것 같다. 그는 미국 명문 스탠퍼드대와 예일대 로스쿨을 졸업했다. 조지프 리버만 연방 상원의원 입법 보좌관, 연방 항소법원 판사시보, 맥킨지 경영컨설턴트, 구글 전략담당으로 경력을 쌓았다. 2006년에는 CBS방송의 리얼리티쇼 ‘서바이벌’에 출연, 5만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아시아계 미국인으로는 처음 우승했다. ‘안경 쓴 공부벌레’란 동양인에 대한 편견을 깨뜨린 일대 사건이었다. 2008년엔 버락 오바마의 대선 캠페인에 참여했고, 오바마 정부 출범 이후 연방통신위원회(FCC) 소비자보호국 부국장으로 일했다. 요즘 미 공영방송 PBS 프로그램의 사회자 등 방송인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미국 이민 2세 권율 씨(37·사진) 이야기다.

그런 그가 “나는 ‘루저’였다”고 고백했다. 15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나는 매일 진화한다》(중앙북스) 출판 기자간담회에서다. 그는 “나의 어린 시절을 잘 표현하는 한마디는 바로 ‘두려움’이었다”고 했다. “선생님을 실망시킬까봐,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할까봐 두려워했고, 그런 모습을 들킬까봐 전전긍긍했던 콤플렉스 덩어리였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 그의 뇌리에 각인된 미국 사회는 ‘무서운 곳’이었다. 그는 덩치 큰 흑인 아이들에게 집단 구타를 당했고, 슈퍼에서 지갑을 훔치려는 아이를 붙잡았다가 칼에 찔릴 뻔한 적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까닭 모를 불안감이 덮치곤 했다. 여덟 살 무렵에는 강박증과 폐쇄공포증 경향도 보였다. 하루에 손을 스무 번 넘게 씻었다. 공중화장실에서 공격을 당해 몇 년간 공중화장실을 가지 못했다. 백인 아이들이 왕따를 시켜 자살을 생각하기도 했다. 그는 “가장 끔찍한 것은 나 스스로도 자신을 최악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었다”고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그는 자신을 공격하는 상대와 정면으로 맞서는 친구를 보고 마음을 고쳐 먹었다. 형의 친구가 왕따를 견디다 못해 세상을 등졌다는 소식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권씨는 “운동으로 변화를 꾀했다”고 말했다. 생각보다 먼저 행동하기로 마음먹었다. 단기목표와 장기목표를 세웠다. 규칙을 정해 그에 따랐다. ‘어떤 수업시간이라도 반드시, 조건 없이, 시작한 지 5분 안에 손을 들어 무언가를 말한다’와 같은 규칙을 만들고 지켰다. 자신을 위한 달력도 만들었다. “1개월 후, 3개월 후에 지금의 나와 조금이라도 달라져 있다면 내 삶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할 것이란 믿음을 잃지 않았죠.”

그는 청소년들에 대한 조언도 했다. 어려움에 직면하면 터놓고 얘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려울 때 말하지 않고 숨기면 안 됩니다. 저도 말하지 못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부모를 더 많이 신뢰해야 했어요. 아이들은 성적이 좋고 말을 잘 들어야 사랑해줄 것이라 생각하지만 부모는 절대 그렇지 않아요.”

그는 스스로의 가능성을 넓히기 위해서는 ‘스펙’보다 ‘스토리’에 주목해야 한다고도 했다. “나 자신에게 더 많은 스토리가 있을수록, 더 많은 경험을 할수록 삶은 풍요로워지는 것”이란 설명이다. 그가 한우물을 파기보다 다양한 분야를 경험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앞으로는 한국적인 남성적 리더십과 설득하고 감동시키는 리더십이 필요한데 폭넓은 경험은 그런 리더십에 필요한 ‘카멜레온 같은 적응력’을 키워준다는 것이다.

매일 ‘발전’하고 ‘진화’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그는 정계 진출 가능성도 열어놓고 있다. “중간 이름이 줄리어스예요. 시저처럼 말이죠. 훌륭한 장군이 되라고 지어주신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한국계 미국인이 정·관계에 더 많이 진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