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5월16일오후4시2분 보도


STX그룹이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에 사모펀드를 조성해 일부 자회사와 보유 지분 등을 사줄 것을 요청했다. 최대한 빨리 자산을 팔아 재무구조 개선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산은은 STX의 요청을 수용할지 여부를 놓고 검토작업에 들어갔다.

16일 금융당국 및 은행권에 따르면 STX는 최근 산은에 1조원대 규모의 자산 매각 과정에 참여해 달라고 제안했다. STX가 제시한 카드의 기본 얼개는 STX와 산은PE가 공동으로 절반씩 출자해 특수목적회사(SPC)를 설립하는 식이다. 이후 STX는 매각을 추진 중인 STX유럽의 자회사 STX OSV를 제외한 국내 비상장 계열사와 해외 자원개발 지분 등 자산을 SPC에 일괄 매각하는 형태다.

예를 들어 STX가 내놓은 자산 규모가 1조원일 경우 STX와 산은PE는 각각 5000억원을 SPC에 출자하고, 자산을 패키지로 묶어 SPC에 1조원을 받고 파는 식이다. STX와 산은PE는 SPC 지분을 50%씩 갖게 된다.

STX 입장에선 사실상 현물출자를 한 셈이지만 자산 매각으로 약 5000억원의 신규 자금을 조달하고 기존 자산에 대한 50%의 지분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STX가 SPC에 매각하는 자산은 STX중공업 경영권과 STX에너지 등 일부 계열사 지분, STX팬오션의 보유 선박, 해외 자원개발 법인 지분 등으로 알려졌다. 약 1조~1조5000억원대 규모로 전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대내외 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자산을 급하게 매각하면 제값을 받기 어렵다”며 “최대한 이른 시간 안에 자산을 팔아 선제적으로 재무구조를 안정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한 방안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만약 추진 중인 STX OSV 매각이 무산될 경우 STX OSV까지 이번 패키지딜에 포함시키는 방안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럴 경우 SPC에 파는 자산 규모는 2조원대에 달하게 된다. STX는 SPC에 자산을 일괄 매각한 후 대내외 여건이 개선되면 산은PE와 함께 자산을 3자 매각한다는 구상이다.

STX의 이번 구조조정 카드는 두산이 2009년 구조조정을 위해 국내 처음으로 시도했던 방식과 비슷하다.

당시 두산은 사모투자펀드(PEF)들과 함께 SPC를 설립하고 두산DST와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지분, 버거킹과 KFC 라이선스를 갖고 있는 SRS코리아, 병뚜껑을 만드는 삼화왕관 등 4개 비주력 계열사를 7800억원에 팔았다. 두산은 이 같은 구조조정으로 마련한 자금을 미국 건설장비 업체인 밥캣의 유상증자 대금으로 활용, 이른바 ‘밥캣 인수 리스크’에서 벗어나는 계기를 마련했다.

STX 측은 업황불황에 따른 일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만큼 산업은행이 적극 지원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다만 산은이 STX가 내민 카드를 받아들일지는 속단하기 어렵다. 산은 관계자는 “검토는 하겠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STX가 SPC에 내놓을 자산 규모가 크기 때문에 산은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예상하기 어렵다는 게 금융권의 관측이다.

특히 STX는 SPC에 자산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우선매수권을 부여받아 나중에 되살 수 있는 조건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STX는 산은과 재무구조개선 약정 체결을 앞두고 최종 조율 작업을 진행 중이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