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수개월간 부처 간 갈등과 업계 찬반 논란을 불러온 ‘수입 와인 인터넷 판매’에 대해 허용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23일 “청와대에서 국세청과 공정거래위원회 1급 간부를 불러 이날 찬반토의를 벌였다”며 “1시간반 동안 논의한 끝에 인터넷 판매를 허용하는 쪽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올초부터 와인 가격 인하 효과를 앞세워 인터넷 판매를 추진해 왔고, 주무 당국인 국세청은 탈세 우려, 청소년 음주 노출, 국민 건강 저해, 형평성 논란 등을 이유로 강하게 반대해 왔다. 공정위와 국세청은 그동안 수차례 부처 간 협의했음에도 견해차를 좁히지 못하고 오히려 정면 충돌하는 양상을 빚으며 팽팽한 기싸움을 벌여왔다. 이날 청와대까지 의견 조율에 나서 잠정 결론에 도달한 배경이다. 국세청은 그러나 “정부 방침이 최종 결정된 것이 아니다”며 계속해서 관련 부처와 협의를 벌여나가겠다고 밝혔다.

국세청 관계자는 “주류의 인터넷 판매에 따른 사회적 부작용이 큰 만큼 시간을 갖고 더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부 고위 관계자는 “앞으로 부처 간 추가 협의가 이뤄지겠지만 허용을 전제로 국세청의 우려를 시스템적으로 보완할 수 있는 대책이 주로 논의될 것”이라고 전했다.

업계에서는 와인 인터넷 판매가 활성화돼 정책 목적인 가격인하 효과를 볼 수 있느냐는 사업자 범위와 성인 인증 절차, 구매량 제한 등을 국세청 고시로 어떻게 정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주류 인터넷 판매는 전통주에 한해 2010년 4월부터 허용됐다. 와인 인터넷 판매가 허용되려면 국세청 고시를 개정해야 한다. 성인인증시스템 등 대부분의 관련 규정은 기존 전통주 고시를 따를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전통주 인터넷 판매는 까다로운 성인인증과 1인 하루 구매량을 50병으로 제한한 규정으로 인해 활성화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구매시 필요한 ‘범용 공인인증’을 받으려면 신청절차가 복잡한 데다 직접 우체국을 방문해 서류를 제출해야 하고 수수료(4400원)도 내야 한다. 유명 전통주업체인 B사는 지난해 인터넷쇼핑몰을 열었으나 이용자가 거의 없어 최근 폐쇄하기도 했다.

정부는 공교롭게도 이날 전통주 인터넷판매 활성화 방안을 내놨다. 범용 인증서뿐 아니라 은행용 공인인증서로도 성인인증을 허용하고, 하루 최대 판매량도 50병에서 100병으로 늘리기로 했다. 이 방안은 국세청 고시 절차를 거쳐 올해 말 시행된다. B사 관계자는 “인증 방법이 은행용 공인인증서로 확대되면 기업·단체가 대부분인 인터넷 구매층이 개인으로 확대될 전망”이라며 “와인도 이 방식이 적용되면 개인도 쉽게 구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업자 범위는 국세청으로부터 정식 수입허가를 받은 수입업체로 제한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중간 도매상 등 유통업체들까지 허용하면 사업자가 난립해 국세청의 감독·관리가 힘들어져 세금 탈루가 횡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업계에서는 수입업체들의 인터넷 판매가격이 대형마트와 백화점 매장 판매가에 비해 10~30% 낮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과 일본 유럽연합(EU) 등 주류를 인터넷으로 판매하는 국가에서는 온라인 판매가격이 매장 판매가에 비해 10~20% 저렴하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한 수입업체 관계자는 “인터넷 판매를 허용한 정부의 정책목적이 가격 인하인데 당연히 내릴 수밖에 없지 않느냐”며 “제품 가격에 따라 다르겠지만 사이트 운영비 등을 감안하면 매장 판매가에서 평균 20~30%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태형/박신영/임원기/최만수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