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의 특성화고 함양제일고 3학년 나경주 군은 24일 오전 6시 학교에서 대절한 관광버스에 올라탔다. 이날까지 경기 고양스 킨텍스에서 열린 ‘2012 대한민국 고졸인재 잡 콘서트’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중국음식 배달을 하는 아버지의 월수입이 130만원인 그에게 취업은 말 그대로 필수다.

나군은 “변변한 정보도 구하기 어려운 시골 학생들에게 이런 대규모 설명회는 정말 감사하고 소중한 기회”라고 말했다. 23~24일 이틀간 계속된 잡 콘서트는 나군과 같이 ‘신(新)고졸시대’를 열어갈 고등학생들에게 새 희망을 제시했다.

◆“이런 기회 없어요”
이번 잡 콘서트에서 양일간 2만명이 넘는 학생과 학부모들이 ‘알짜’ 정보를 얻어갔다. 전국 각지에서 온 학생들은 “이번 잡 콘서트에서 직업의 종류나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 등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어 큰 힘이 됐다”고 입을 모았다.

나군과 같은 학교 동급생 83명은 낮 12시께 행사장에 도착, 조금이라도 정보를 더 많이 얻기 위해 잰걸음으로 부스들을 누볐다. 이 학교 서지혜 양은 “LS산전 부스에서 미리 준비해온 자기소개서를 내밀었더니 인사 담당자가 빨간펜으로 첨삭을 해줬다”며 “함양에선 절대 이런 정보를 얻을 수 없을 것”이라고 기뻐했다.

강원 고성의 동광산업과학고에서도 100여명의 학생들이 행사장을 찾았다. 이 학교 송재환 교사는 “촌(村) 지역이라 아직 취업보다는 진학을 생각하는 분위기가 있다”며 “학생들에게 요즘은 고졸 취업이 대세가 되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참여를 독려했다”고 말했다.

◆“자신감이 생긴다”
삼성생명 부스에서 만난 오윤희 양(서서울생활과학고 3년)은 만성 신부전증을 앓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혼한 후 언니가 아르바이트를 해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오양은 “꼭 취업해 가족을 보살피는 것이 꿈”이라며 “대기업 인사 담당자에게 자격증보다 성적이나 인성이 중요하다는 말을 직접 들으니 눈이 번쩍 뜨였다”고 말했다.

이미지 컨설팅 부스에서 상담을 받은 손선화 양(금명여자정보고 3년)은 중학교 때 아버지 사업이 부도가 나면서 하루라도 빨리 가정에 보탬이 되고자 특성화고를 선택했다고 했다. 손양은 “‘웃는 연습을 더 해라’ ‘진한 색 옷이 잘 어울린다’ 등 학교에선 접하기 어려운 구체적인 조언을 들으니 자신감이 생긴다”며 활짝 웃었다.

임종현 군(평촌공고 3년)은 “가정 형편도 어렵고 대학에 가도 공부를 따라갈 능력이 없어서 고민이 많았는데 잡 콘서트에 와보니 학교에서 배운 것으로 취업은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꼼꼼한 준비로 눈길 끈 학생들

많은 학생들이 꼼꼼한 사전 준비로 기업의 인사 담당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인천세무고 3학년 이명은, 위희경 학생은 보유하고 있는 금융 관련 자격증들과 학업 성적 등을 정리한 자기소개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갖고 상담에 임해 눈길을 끌었다. 경복비즈니스고 3학년 박녹지 학생은 “기업 인사 담당자들이 취업 희망자를 대하는 친절하고 정중한 자세를 보면서 기업을 경영할 때 갖춰야 할 마음가짐을 배웠다”고 말했다.

경화여자비즈니스고 3학년 박지수 학생은 이날 행사에 대비, 자기소개서 입사지원서 등을 사전에 꼼꼼히 준비해 인사 담당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박양은 “곧 다가올 취업 시즌에 한발 앞서 전 은행이 참여하는 행사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며칠 밤을 새워 준비했다”고 말했다.

여성의류업체에서 디자인 보조 업무를 하는 김은지 씨(24)는 “이번 행사에는 대기업이나 금융회사들이 많았는데 다음에는 패션 분야 기업들도 많이 왔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학생보다 더 바쁜 교사들

학생들을 인솔해 잡 콘서트장을 찾은 교사들 역시 취업을 더 잘 시키기 위해 필요한 정보를 찾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김재숙 인천정보산업고 교사는 “다양한 기업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이나 진로상담, 적성검사 등 다양한 부스가 마련된 것이 이번 잡 콘서트가 다른 취업 설명회와 가장 크게 차별화되는 부분이었다”고 평가했다. 인천정보산업고는 3학년 400명 전원이 잡 콘서트장을 방문했다.

유혜원 인천세무고 교사는 “다음 잡 콘서트는 1주일은 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박근성 휘경공고 교사는 “단순한 취업 정보뿐 아니라 다양한 사회 현상을 학생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최고의 현장학습”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렸다.

교사들은 한결같이 ‘고졸 취업이 대세’라는 데 공감했다. 유 교사는 “학생들이 취업의 실질적인 장점을 보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중학교 교사도 행사장을 찾았다. 홍성희 심성중 진로지도교사는 “고교에 진학하기 전부터 차근차근 특성화고 진학과 선(先)취업 후(後)진학의 장점에 대해 가르쳐야 한다”며 “중학생 학부모들도 고졸 취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강현우/양병훈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