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면에 수평 널빤지 선반을 걸쳐 놓은 것 같다. 그런 길을 굽이굽이 버스가 오른다. 버스 안이 술렁거린다. 아찔하다 못해 공포스럽다. 해발 2000ｍ, 길이 25㎞의 협곡과 절벽에 불교·도교 사원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어떻게 저런 곳에 사원을 지었을까 하는 의문은 기막힌 절경 앞에 이내 사라진다. 이 산이 바로 ?산(綿山). 산둥성(山東省)과 산시성(山西省)을 경계짓는 타이항산(太行山)의 한 줄기인데 가히 ‘중국의 그랜드 캐니언’이라 불릴 만하다.

○절벽 위의 하늘도시 몐산

‘짝퉁 천국’인 중국에서 산수만큼은 진짜배기라는 걸 실감하며 황홀경을 맛본 지 20여분 지났을까. 눈 앞에 우뚝 멈춰선 또하나의 비경. 근데 이건 사원이 아니라 숙소란다. 윈펑(雲逢)서원, 그 ‘공중호텔’에서의 2박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인간계와 선계의 구분이 모호해진 새벽 안개 속을 몇 걸음 떼니 거대한 절벽동굴 안에 오롯이 담긴 사원이 보인다. 윈펑이란 이름의 사찰이다. 당태종 때 시안(西安)의 가뭄을 해결한 고승이 머물렀다고 한다. 108번뇌와 12지신을 상징하는 120계단을 올랐더니 그제서야 제 모습이 드러난다.

몐산은 중국 역사에서도 빼놓을 수 없다. 진(晋)나라 때의 충신 개자추(介子推)가 불타 죽음으로 인해 한식(寒食)이 유래된 곳이다. 개자추 모자(母子)를 기리는 사당은 멀리서 봐도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충심과 효심을 중히 여기는 중국 사람들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몐산에는 이 밖에도 볼거리가 많다. 대표적인 곳이 세계적 도교사원인 다뤄궁(大羅宮). 계단식 암벽에 세워진 이 사원을 보려고 절벽 속에 설치한 엘리베이터에 올랐더니 웅장하고 화려하기 그지없다. 12명의 등신불이 살아 있는 듯한 정궈사(正果寺)와 작은 백담사 계곡을 연상시키는 서현곡풍경구도 안 봤으면 후회할 뻔했다.

○‘민간 자금성’ 왕자다위안

몐산에서 차로 15분 정도 달려 도착한 곳은 민간의 자금성이라 불리는 왕자다위안(王家大院). 총면적 4만5000㎡에 113개의 정원과 1118칸의 방이 있는데 한마디로 으리으리하다. 청나라 때 두부장사로 돈을 번 왕씨(王氏) 형제의 집이라는데 대문 안으로 들어설수록 겹겹의 안채가 넓어지는 게 특징이다. 높은 담벼락을 끼고 오밀조밀한 골목길을 걷다 보니 처마 밑 조형물 하나하나가 정교하고 우아하다. 왕자다위안 주변엔 지금도 사람이 살고 있는 토굴이 많은데 지붕 위에 밭이 있어 더 흥미롭다.


○핑야오고성의 도삭면 일품

왕자다위안에서 산시성 성도 타이위안(太原) 쪽으로 40여분 달리자 회백색의 웅대한 성벽이 가로막는다. 서주(西周) 선왕(宣王) 때부터 건설하기 시작했다는 고성 핑야오(平搖)다. 현재의 성벽과 건축물이 대부분 14세기 명나라 때 지어졌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유네스코 관계자들이 199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할 당시 입을 다물지 못했다고 한다.

성벽 둘레만 6163ｍ, 여의도 면적의 5배나 되는 성 안팎에는 지금도 50여만명이 살고 있다. 윈난성의 리장고성(麗江古城), 다리고성(大理古城), 후난성의 펑황고성(鳳凰古城)에 비해 때가 덜 묻어서인지 중국 관광객들도 많다.

고성 전체를 조망하기 위해 랜드마크인 시루(市樓)에 올랐다. 명·청 시대의 수많은 민가와 상점 등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거리를 천천히 걸으니 옛 정취가 더욱 물씬 풍긴다. 그때 눈에 띄는 간판 하나, 르성창(日升昌)이다. 르성창은 중국 금융의 허브였던 곳으로 100여년 전 산시성 출신 진상(晋商)들이 전국을 무대로 활약했던 당시 상황을 엿 볼 수 있다.

무협지의 협객이 출몰할 듯한 객잔(客棧)에서의 하룻밤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아침식사로 40위안에 사먹은 즉석 도삭면(刀削麵) 맛은 그야말로 말이 필요없다. 오후엔 바삭바삭 구운 전통 월병인 타이구빙(太谷餠) 한 봉지를 옆구리에 끼고 다니며 출출함을 달랜다.

○유럽인들이 더 좋아하는 진츠사당

5세기 북위 때부터 지어졌다는 진츠(晋祠)는 가장 중국다운 고건축물이다. 춘추시대 진(晋)나라를 세운 당숙우(唐叔虞)를 기리는 사당으로 1300여년간 증축한 흔적이 도처에 산재해 있다. 진츠의 자랑거리는 뭐니뭐니 해도 어머니 읍강(邑姜)을 모신 성모전(聖母殿). 기둥 하나없이 회랑과 처마의 받침이 건물 전체를 지탱하고 있는데 회랑 기둥에 조각된 반룡(龍)은 정교하면서도 생동감이 넘친다. 또하나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있다. 타이위안 인근 제슈(介休)에 있는 장비고보(張壁古堡)다. 전쟁을 대비해 사통팔달의 땅굴을 파고 삼면을 낭떠러지로 만들어 적군이 쳐들어와도 몰살될 수밖에 없는 특이한 구조로 돼 있다.

삼국지에 나오는 관우, 시인 백거이, 삼국지연의를 쓴 나관중의 공통점은 바로 산시성 출신이라는 것. 발음이 거의 같은 산시성(陝西省)과는 달리 산시성은 그다지 알려진 곳이 아니다. 최근에 항공편이 늘면서 새색시 같은 자태를 드러냈는데, 알고 보니 역사의 보고다.


◆ 여행 팁

세계의 국수가 중국에서 시작됐고 중국의 국수 역사는 산시에서 시작됐다고 할 만큼 산시성은 ‘누들로드(Noodle Road)’의 시발점으로 유명하다. 특히 어깨에 반죽을 올리고 칼로 재빠르게 면발을 잘라내는 도삭면(刀削面)과 면발을 길게 한 가닥으로 뽑아내는 일근면(一根面)은 산시를 대표하는 면요리. 이 외에도 무려 400여가지의 국수가 있다. 24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식초도 산시의 특산물이다. 중국사람들은 식전에 식초를 한모금 마시기도 한다.

내달 2일부터 10월20일까지 인천에서 타이위안까지 아시아나항공 전세기가 주 1회(토요일) 운항한다. 오후 12시20분 출발해 약 2시간20분이면 현지에 도착한다. 중국 전문여행사인 레드팡닷컴(www.redpang.com)이 하나투어 모두투어 자유투어 등의 여행사에서 연합 판매한다. ?산(윈펑서원 2박)~왕자다위안~핑야오고성(객잔 1박)~진츠~타이위안(1박) 코스의 4박5일 상품 가격은 69만9000원. (02)6925-2569

산시성=전장석 기자 sak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