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시장의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미국 달러와 금이 엇갈린 운명에 처했다.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우려, 스페인 은행 위기 등 유럽발 악재가 다시 불거지면서다. 놀란 투자자들이 미국 국채로 몰려들면서 달러의 가치는 계속 오르는 반면 금값은 하락하고 있다. 금이 ‘안전자산’으로서의 지위를 잃은 게 아니냐는 분석까지 나온다.

◆금 가격 이달 들어 7% 하락

금 가격은 뉴욕상업거래소에서 29일(현지시간) 1.3% 하락해 온스(31.1035g)당 1548.60달러를 기록했다. 이달 들어서만 7% 떨어졌다. 올초와 비교하면 1.1% 하락한 상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과거 유럽에서 위기가 불거지면 투자자들은 금을 사들였지만 이제 금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며 “안전자산으로서 금의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금은 위험자산으로 분류되는 구리와 같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 3개월간 뉴욕상품거래소 금 가격과 런던금속거래소 구리 가격은 0.5의 상관관계를 보였다. 작년 같은 기간 상관관계(0.3)보다 높았다.

금 가격 하락은 미국 국채 랠리와 관련이 깊다. 금값이 미국 달러로 표시되기 때문에 달러 가치가 오르면 다른 통화를 보유한 투자자들은 금을 사기가 힘들어진다. 최근 유로화 가치가 하락하자 금 가격이 동반 하락한 것도 이 때문이다. 세계 최대 금 수입국인 인도에서도 루피화 가치가 하락하면서 금 수요가 줄어들고 있다. 세계금협회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전 세계 금 수요는 전년 대비 5% 감소했다. 헤지펀드 등 기관투자가들도 달러 강세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금 보유 비중을 줄이는 추세다.

◆여전히 부족한 달러

반면 미국 달러에 대한 수요는 여전히 견조하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2008년부터 두 차례의 양적완화(채권 매입)를 통해 2조3000억달러를 찍어냈지만 시장은 여전히 달러를 원하고 있다. 달러 가치가 최저점을 찍었던 지난해 7월27일 이후 현재까지 미국 달러는 16개 주요 통화 대비 오름세를 지속하고 있다.

달러에 투자자가 몰리는 건 유럽 재정위기로 최고 투자등급을 보유한 투자자산의 절대량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이 100bp(1.00%) 이하인 국가의 숫자는 지난해 8개국에서 올해 5개국으로 줄어들었다. 이에 해당하는 국채 규모도 지난해 24조달러에서 올해는 14조달러로 줄었다. 투자 원칙상 최고 등급의 투자 자산을 일정 비율 이상 보유해야 하는 투자자들에게 달러 외에 선택의 여지가 별로 남지 않은 셈이다.

하지만 금과 달러의 운명은 언제든 다시 엇갈릴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각국 정부가 본격적으로 경기 부양에 나서면 금값이 오름세로 전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11월 대선 이후 미국 정치권이 급격한 재정긴축에 나설 경우 달러 가치가 하락하면서 금이 안전자산의 지위를 회복할 것이란 분석도 적지 않다.

뉴욕=유창재 특파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