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대출 막 퍼주라는 정부…모럴 해저드 부채질
부산경찰청은 지난 29일 불법 대부업자 문모씨(37) 등 대출사기단 20명을 입건하고 서민금융상품 부정 대출자 504명을 적발했다. 무직·저신용자들에게 허위 서류를 만들어 금융사에서 82억원을 대출받게 해주고 수수료 30억원을 챙긴 혐의다. 사기꾼들을 통해 바꿔드림론, 햇살론 등 서민금융상품 대출을 소개받은 대출자 대부분은 원금은커녕 이자도 제대로 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들도 애써 대출금 회수에 나서지 않았다. 정부 보증으로 큰 손해를 입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서민금융상품을 이용하는 소비자들과 상품을 판매하는 은행들의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서민금융 관련 브로커가 활개를 치고 중복 대출, 연체율 증가 등의 문제가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금융당국이 아무런 대책 없이 서민금융상품 보증 한도 및 대상 범위 확대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인 이유로 서민금융 지원에 무리하게 드라이브를 걸면서 오히려 서민들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국무총리실은 31일 바꿔드림론, 미소금융, 햇살론 등 서민금융 상품의 신청 요건도 완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자산관리공사의 저리 전환대출 상품인 바꿔드림론은 소득 기준을 4000만원 이하에서 4400만원 이하로 조정하고 연체 기록이 있어도 지원대상에 포함했다. 미소금융은 재산 요건을 수도권·광역시는 1억3500만원 이하에서 1억5000만원, 지방은 8500만원에서 1억원으로 올렸다. 햇살론의 경우 소액대출(500만원 이하)에 대해선 재직확인서, 사업사실확인서만 제출하면 지원받을 수 있다.

금융당국이 서민금융상품 지원 확대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부작용은 이미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저축은행 대출자들을 꼬드겨 서민금융상품 대출을 알선해주고 수수료를 뜯어내는 불법 브로커가 늘고 있다. 바꿔드림론, 햇살론 등을 동시에 지원받는 중복 대출도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이 와중에 바꿔드림론의 연체율이 6%를 넘어서는 등 서민금융상품 연체율도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금융·보증기관의 부실 우려까지 나오는 이유다.

주택금융공사는 최근 2금융권의 고금리 전세대출을 은행권 대출로 갈아탈 수 있게 해주는 ‘징검다리 전세보증’ 대상을 부부 합산 연소득 5000만원 이하로 확대하면서 대출 보증비율까지 기존 90%에서 100%로 늘렸다. 국민·우리·신한·하나 등 시중은행들이 나머지 10%의 리스크를 책임지는 것을 꺼려 적극적으로 고객 유치에 나서지 않자 금융위원회가 결국 공사의 100% 보증 방안을 허용한 것이다.

하지만 100% 보증 대출의 경우 상환을 미루거나 아예 갚지 않으려는 사람이 나올 가능성이 높아 모든 리스크를 공사와 정부가 부담할 것으로 금융권은 보고 있다. 은행들이 정부 보증으로 인해 금융거래확인서, 소득금액증명원 등 대출심사 과정을 엄격하게 진행하지 않고 실적 경쟁에만 치중할 공산이 커서다. 이에 대해 주택금융공사는 보증을 제공할 때 집주인의 동의를 얻어 100% 질권을 설정함으로써 부실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정부가 올 연말 대선을 의식해 각종 서민금융 정책을 밀어붙이는 느낌이 든다”며 “도덕적 해이를 막는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위 관계자는 “금융권의 팔을 비틀어 서민금융상품 재원을 마련하는 데 한계가 온 게 사실”이라며 “필요한 사람들에게 지원을 집중할 수 있는 보완책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창민/강동균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