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이대로 가면 3류, 4류 회사가 될지 모른다.”

5일 오전 8시30분 서울 서초동 삼성사옥엔 이건희 삼성 회장의 육성이 울려퍼졌다. 한창 근무를 준비하던 직원들은 깜짝 놀라 사내 TV를 봤다. 오는 7일 이른바 ‘프랑크푸르트선언’ 기념일을 앞두고 특별 제작된 사내 방송물 ‘신경영로드를 찾아서 1부’에서 나온 19년전 발언이었다.

신경영은 1993년 6월7일 이 회장이 독일 프랑크푸르트 캠핀스키호텔에 그룹 임원 1000여명을 모아놓고 양적 성장이 아닌 품질 위주의 경영을 주문하면서 붙인 개혁작업의 이름이다. 1987년 취임 이후 전면에 나서지 않았던 이 회장은 1993년 3월부터 6월까지 4개월 동안 1800여명이 넘는 임직원들을 해외로 불러 500여시간 넘게 열변을 토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 “뒷다리만 잡지마라” “일류가 되지 못하면 망한다” “불량은 암이다” “업의 개념을 파악하라” “고객이 두렵지도 않은가” 등이 모두 당시 이 회장이 한 말이다.

이날 방송에선 지난해 입사한 신입사원들이 도쿄와 오사카, 로스앤젤레스(LA), 프랑크푸르트, 런던 등지를 찾아 20여년 전 신경영의 자취를 찾는 모습이 방송됐다. 신경영의 촉발점이 됐던 ‘후쿠다 보고서(삼성 디자인 부문의 문제점을 정리한 보고서)’를 만든 후쿠다 시게오 전 삼성전자 고문은 방송에서 “이 회장은 일본이 30년 만에 이뤘던 것을 10년 만에 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며 “나는 당시 프로세스를 개혁할 것을 조언했다”고 회상했다.

삼성이 프랑크푸르트선언 기념일을 맞아 이 같은 특별 방송을 내보낸 것은 직원들을 ‘신경영 정신’으로 재무장시키기 위한 뜻이 담겼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로존 통합, 급격한 정보화 등으로 요동쳤던 1993년처럼 유럽발 위기가 세계로 확산되면서 위기가 닥쳐오고 있어서다. 삼성 관계자는 “직원들의 각오를 새롭게 다지기 위해 신경영 정신과 의미를 담은 영상물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삼성에서 신경영은 큰 의미를 갖는다. 신경영 이후 ‘양 중심’에서 ‘질 중심’으로 경영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이를 통해 체질을 혁신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삼성그룹의 순이익은 신경영을 시작할 당시인 1993년 4200억원에서 지난해엔 20조원으로 47배 이상 커졌다. 매출은 41조원→274조원, 자산은 41조원→435조원, 임직원은 19만명→37만명으로 불어났다.

‘신경영로드를 찾아서 2부’는 오는 7일 방송한다. 신경영의 ‘성지’인 프랑크푸르트 캠핀스키호텔을 찾아가는 내용이다. 삼성은 이 회장의 취임 25주년 기념일인 오는 12월1일에도 의미 있는 방송물과 행사 등을 기획하고 있다. 지난 3월22일 그룹 창립기념일(삼성물산 창립기념일) 때도 이 회장의 취임 25주년 방송물을 내보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