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에 전적으로 의존해온 한국의 원유수입 구조가 바뀌고 있다. 국내 원유의 중동 수입 의존도는 지난해 7월 90%에 육박했다. 그러나 정유사들은 중동 정세가 불안해지자 안정적인 원유 확보를 위해 유럽의 북해산 브렌트유로 눈을 돌리고 있다. 여전히 수입비중은 80% 이상으로 두바이유가 절대적이지만 올 들어 브렌트유의 수입물량 증가세가 가파르다. 앞으로 중동 정세와 두바이유 가격 변화에 따라 브렌트유 수입 물량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7일 한국 정유업계가 브렌트유를 대규모로 사들이면서 브렌트유 가격을 떠받치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7월 발효된 한·EU(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FTA)으로 3%의 관세가 철폐된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중동 지역의 정정 불안으로 두바이유 가격이 상승하면서 브렌트유가 새로운 원유 공급원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관측이다. 국내 정유사들의 수입 규모가 커지면서 브렌트유 가격 상승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SK에너지와 GS칼텍스가 영국, 노르웨이 등으로부터 브렌트유를 들여오고 있다. 현대오일뱅크도 하반기 브렌트유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석유공사의 국가별 원유수입 동향을 살펴보면 지난해 8월까지만 해도 유럽산 원유 수입 물량은 25만배럴로 0.34%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난해 말 200만배럴을 넘어선데 이어 올 들어 2월엔 481만9000배럴로 6개월 만에 20배가량 급증했다. 3, 4월에도 전체 물량 중 5%대의 비중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FT에 따르면 한국 정유사들이 매입한 브렌트유 규모가 지난달에 정점을 이뤄 북해 포티스유 월간 생산량의 26%인 300만배럴을 사들였다.

브렌트유는 두바이유에 비해 불순물 함량이 낮고 정제비용이 적게 든다. 그러나 국내로 들여오기엔 두바이유보다 운송비가 많이 드는 것이 단점이었다.

그러나 EU와 FTA 체결로 철폐된 3%의 관세가 운송비를 상쇄해준다는 점에서 매력도가 높아졌다. 두바이유와의 가격차도 줄었다. 지난해 6월만 해도 브렌트유는 두바이유보다 배럴당 7~8달러 비쌌지만, 3달러 수준으로 가격차이가 좁혀졌다. 올 4월엔 두바이유 가격 상승으로 원유 단가 차이가 역전되기도 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중동 정세 불안도 한 요인이지만 가격차가 좁혀진 데는 경기위축으로 유럽 석유 수요가 줄어든 영향도 있다”며 “관세 철폐 효과를 노리고 지난해엔 시험삼아 들여오던 물량을 올 들어서 본격적으로 들여오고 있다”고 말했다.

GS칼텍스 관계자는 “유종 다변화라는 큰 틀 내에서 두바이유와의 가격 차 등도 고려해 당시 상황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라며 “브렌트유 물량은 늘었지만 앞으로도 계속 늘어갈지는 장담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윤정현/고은이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