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류 수출기업인 누리안 인터내셔널은 최근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현지공장에서 생산하던 고급 의류제품 일부를 국내에서 생산하기로 결정했다. 10여년 전 인건비 부담을 이기지 못해 동남아로 생산기지를 이전한 이후 첫 ‘U턴’이다.

최진오 영업부장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고급 의류의 경우 관세 32%가 철폐되면서 인건비 차이를 극복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회사는 내년에 국내에서 생산하는 물량을 지난해 800만달러의 5배인 4000만달러어치로 늘리기로 했다. 지난해 회사 전체 매출 1억2000만달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다.

◆FTA로 덕보는 중소기업들

정부가 21일 한·미 FTA 발효 100일을 맞아 중소기업들의 FTA 활용도를 점검한 결과 누리안과 같은 수혜기업들이 크게 늘고 있다. KOTRA에 따르면 섬유뿐 아니라 머시닝센터, 유압부품, 보안카메라, 절전 멀티탭, 에폭시수지, 승용차용 타이어, 모조장신구, 유리밀폐용기 등 15개 품목에서 중소기업들의 대미수출이 크게 늘었다.

자동차 콘덴서는 기존에 5.6%가 부과되던 관세가 철폐되면서 올 들어 4월까지 대미 수출이 전년 동기 대비 31배나 늘었다. 기어류 수출도 3배 증가했다. 섬유제품 수출은 11.5% 관세가 철폐된 면소재 제품이 61%, 14.9% 관세가 철폐된 인조섬유 제품은 58% 각각 늘었다. 작년까지 중국산에 밀려 두 자릿수의 수출감소세를 보여온 모조 장신구도 올 들어 5%대의 증가세로 돌아섰다. 11%의 관세철폐 효과 덕분이다.

윤재천 KOTRA 시장조사실장은 “산업계 곳곳에서 긍정적인 실적이 나타나고 있다”며 “FTA로 관세인하 혜택을 본 중소업체들이 국내생산 물량을 확대하면서 투자와 고용확대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FTA가 수출 버팀목 역할

지난 3월15일 한·미 FTA가 발효된 후 100일 동안 대미 수출은 166억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4% 늘었다. 이 기간 중 우리나라 전체 수출은 1438억달러로 2.5% 줄었다. 특히 자동차 부품, 석유제품 등 FTA 혜택 품목군은 수출이 16.8%나 늘어나면서 증가세를 주도했다. 유로존 재정위기로 인한 글로벌 경기 둔화를 FTA 효과로 상쇄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대유럽연합(EU) 수출은 지난해 7월 FTA 발효 이후 유로존의 재정위기 여파로 12.1% 줄었지만 자동차와 자동차부품, 석유제품 등의 수출은 20.2%나 증가했다. 특히 가격에 민감한 폴리에스터(관세 4%)의 경우 이탈리아 내 한국산 점유율이 3위에서 1위로 올라섰고 벨기에에서는 수입시장의 80%를 점유하는 등 시장점유율이 약진하는 품목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미국과 EU기업들의 국내 직접투자가 늘어난 점도 눈에 띈다. 미국과의 FTA 발효 이후 미국기업의 국내 직접투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11% 증가한 6억300만달러를 기록했다. EU기업의 국내 직접투자도 지난 5월까지 11개월 동안 37억700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35% 증가했다.

FTA로 주요 수입품들의 소비자 가격이 떨어지는 효과도 가시화되고 있다. 전기다리미, 프라이팬, 자동차 등 미국, EU산 수입품 22개 제품의 가격을 비교한 결과 15개 품목의 가격이 인하된 것으로 조사됐다. 김익주 재정부 무역협정국내대책본부장은 “FTA가 어려운 대외 여건 속에서도 우리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유정/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