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많다고 대출 퇴짜…베이비부머 '이중고'
2년 전 정년퇴직하고 식당 개업을 준비하던 김모씨(61)는 사업자금이 1000만원 정도 부족해 한 저축은행을 찾았다. 회사다닐 때 연체한 기록이 남아 은행에서는 돈 빌리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나이가 문제였다. 그는 “몇 군데 저축은행과 캐피털사를 찾았지만 대부분 나이에 걸려 대출을 받지 못했다”며 “높은 금리가 부담이 됐지만 대부업체 돈을 쓸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11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저축은행, 캐피털, 카드 등 2금융사가 신용대출 조건에 ‘나이 제한’을 두고 있어 소비자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일부 회사는 만 55세만 넘으면 신용대출을 하지 않고 있다. 나이 조건을 완화한 곳조차 만 60세가 넘으면 대출을 거부하고 있다. 이에 따라 베이비부머(1955~1963년) 중 일부는 퇴직 후 긴급 생활 자금 등이 필요해도 마땅히 이용할 금융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저축은행업계는 아예 홈페이지 등에 나이 제한 조건을 명시하고 있다. 현대스위스저축은행은 무보증 개인신용대출 상품인 ‘알프스 스피드론’의 대출 자격에 만 20~55세의 ‘나이 조건’을 들고 있다. 이 대출은 본인 명의의 계좌 및 휴대폰, 신용카드만 있으면 누구나 가능하지만 55세를 넘으면 안 된다. 공평저축은행은 최저 금리 연 7.9%로 최대 7000만원까지 빌려주는 ‘저스트J론’이라는 신용대출 상품을 팔고 있지만 55세 이상은 이용할 수 없다.

캐피털이나 카드업계도 사정은 비슷하다. 본사 차원에서 명시적으로 나이 제한을 두고 있지는 않지만 대출모집인을 통해 ‘대출 나이’를 통제하고 있다. 한 대출모집인으로부터 받은 농협캐피탈 상품 가이드를 보면 자영업자 대상 신용대출은 만 59세까지만 가능하다. 롯데캐피탈이 프리랜서 등을 대상으로 판매하는 ‘캡론’은 60세까지만 이용할 수 있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신용대출은 대출자 나이에 따른 리스크가 매우 크다”며 대출 부실을 방지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나이 제한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 캐피털사 관계자는 “대출할 때 단순히 나이를 제한하는 것이 공정거래법상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도 “은행보다 신용평가 시스템이 덜 갖춰진 저축은행이나 캐피털사는 ‘나이’를 유용한 심사 기준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60세가 넘어가면 연체율이 급격히 높아진다는 게 이들 회사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관련 법규나 감독규정에 나이로 대출을 제한할 수 있는 근거는 전혀 없다”며 “특히 ‘최저 나이’가 아닌 ‘최고 나이’를 일률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