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2월부터 오티스 현대 등 엘리베이터 대기업들의 유지·보수 하도급 거래를 차단하는 내용의 승강기안전법 개정안에 대기업은 물론 중소업계까지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이 법안은 대기업과 협력사의 연결고리를 끊음으로써 독립 중소기업들에 일감을 몰아주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 대기업의 협력사들도 대부분 중소기업인 데다 건물주들이 승강기 안전을 위해 영세업체들과의 관리계약을 꺼리고 있어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정부가 골목상권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의 영업시간을 제한했지만 정작 이들 유통업체에 납품하는 중소기업들이 피해를 입고있는 것과 비슷한 사태가 생겨날 수도 있는 분위기다.

◆행안부 “독립업체 일감 늘려야”

11일 오전 10시 서울 광화문 정부청사. 현대엘리베이터, 오티스엘리베이터코리아, 티센크루프엘리베이터코리아 등 승강기 관련 대기업의 협력업체 종사자 1000여명이 전국에서 몰려들었다. 승강기안전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 이후 행정안전부가 구체적인 시행령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를 상대로 항의 집회를 연 것. 이 자리에서 서길수 승강기보수협회장은 “중소 협력업체들 연간 매출의 70% 이상이 대기업과의 거래에서 발생하고 있다”며 “정부가 독립 중소업체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협력업체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승강기 유지·관리분야의 시장규모는 연간 1조5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 60%가 현대, 오티스, 티센크루프 등 대기업이 차지하고 있다. 이들 대기업은 일감 중 절반을 다시 협력업체에 맡기고 있다. 승강기안전법 개정안은 바로 이 부분에서 대기업과 협력사의 하도급 거래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이 경우 대기업은 자신이 건물주로부터 수주한 일감을 단독으로 처리하든가, 아니면 아예 수주를 하지 말아야 한다. 행안부 관계자는 “인건비 비중이 높은 대기업들이 수주 자체를 포기할 가능성이 높고, 그에 따라 독립 전문업체들의 일감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 “안전 관리 부실 우려”

이 같은 승강기안전법 개정안에 대해 전문가들은 위헌 소지가 있다고 지적한다. 정부가 사적계약 관계에 과도하게 개입했다는 것.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원은 “정부가 안전 관리 차원의 지침을 줄 수 있지만 계약 당사자를 제한하는 내용의 법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이 법이 아무런 논란없이 지난 2월 국회를 통과한 것 자체가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안전관리가 부실해질 수 있고 유지·관리 비용이 올라갈 것이라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한 대형 유통업체 관계자는 “승강기와 에스컬레이터 등에서 안전 사고가 많이 일어나기 때문에 기술력을 보장할 수 없는 업체에 유지·관리를 맡길 수는 없다”며 “대기업 인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승강기 유지·관리 일감이 몰릴 경우 단가가 올라갈까 걱정”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승강기안전관리원의 통계에 따르면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승강기 보수 부실로 인한 사고 50건 중 대기업과 협력업체 잘못으로 인한 사고가 15건이었으며 나머지 35건이 독립 중소업체의 과실 때문이었다.

박신영/이유정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