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간다고?” “중국 저장(浙江)성 쑤이창(遂昌)현.” “쑤이창? 거긴 뭐가 유명한데?” “일정표를 보니 남첨암, 신룡곡, 천불산의 경치가 좋다는데….” “다른 건?” “명나라 시인 탕현조(湯顯祖). 거기서 5년간 현장을 했다네. 모란정(牧丹亭)이란 유명한 희곡을 썼대. 동양의 셰익스피어래.” “탕 누구라고?”

애당초 ‘좋은 데 가는구나. 부럽다’란 말은 기대하지 않았다. 저장성도 낯선데 시(市)도 아니고 현(縣)이라니…. 베이징 사람이 강원도 양구군에 여행하러 간다면 역시 이런 대화가 오가겠지.

쑤이창현을 포털 검색창에 입력해봤다. 지역 소개 몇 줄과 사진 몇 장뿐. 국내에는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땅이다. 구글맵에 들어가니 산속에 박힌 조그만 도시. “오지 아니야? 호텔이나 있으려나. 고생 좀 하겠네.” 컴퓨터를 함께 들여다보던 동료가 혀를 찼다.

◆추억 속 시골, 쑤이창현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로 두 시간. 저장성 제2의 도시 닝보(寧波)에 내렸다. 공항에서 버스를 탔다. 쭉 뻗은 고속도로를 따라 시골 풍경이 이어졌다. 대나무숲, 논, 밭, 녹차밭…. 낯설지 않았다. 한국의 시골길을 달리는 기분이었다. 경치보다 닝보 쪽으로 줄지어 달리는 컨테이너 트럭들이 오히려 이채로웠다. 경공업 중심지 이우(義烏)에서 출발한 차들이라고 했다. 호기심이 사라지며 졸음이 몰려왔다. 눈을 떴다 감았다 하기를 4시간30분여. 커다란 간판이 힐끗 눈에 들어왔다. ‘시골의 추억-쑤이창현. 당신을 환영합니다.’ 걱정과 달리 깨끗한 호텔도 있었다.

저장성 리수(麗水)시 쑤이창현. 해발 1000m가 넘는 700여개의 산에 둘러싸인 곳이다. 전체 면적의 88%가 산악지대다. 산속에 있지만 역사는 깊다. 기원전 218년에 행정기구가 들어섰다고 한다. 춘추시대엔 월나라, 삼국시대엔 손권의 오나라에 속했다. 1927년 일제가 침략했을 땐 홍군(紅軍)이 3년간 유격전을 벌였던 공산혁명 성지이기도 하다. 집안 신을 모시는 제단에 마오쩌둥(毛澤東) 사진을 걸어둔 주민이 아직도 많다고 한다. 그러나 가이드 한승룡 씨는 “혁명 성지에 가보면 아직도 대부분 못살아요”라고 했다. 왼쪽 깜빡이를 켜고 급하게 우회전하는 중국의 단면이다.

◆풍광보다 빛나는 인심, 난젠옌(南尖巖)

쑤이창 현청(縣廳)에서 차를 타고 남서쪽으로 1시간30분을 달리자 해발 1200m 고지에 명승지 난젠옌이 있다. 눈앞이 탁 트였다. 초록색에서 하늘색으로 옅어지며 멀어지는 산등성이들. 마치 물결이 출렁이는 듯했다. 아래쪽으로 눈길을 돌리니 산골짜기를 깎아 만든 계단식 다랑이논이 끝없이 펼쳐졌다. 1년에 200일쯤 운무(雲霧)가 일어 장관이라는데 아쉽게도 햇살만 따가웠다. 섭씨 37도. 버스에서 내린 지 10분 만에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서둘러 계곡에 들어섰다. 태양을 피하니 서늘한 기운이 몸을 감쌌다. 대나무 숲을 지나온 바람이 땀을 식혀줬다. 기묘한 봉우리와 폭포, 아기자기한 경치가 이어졌다. 편안한 풍경에 마음이 느긋해졌다.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느낌이었다.

1시간쯤 걸으니 반링춘(半嶺村). 황토로 벽을 쌓고 진흙기와를 얹은 집 50여 채가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주민들은 낯선 여행객에게 선뜻 문을 열어줬다. 들어가도 되나 싶어 머뭇거리자 어서 오라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집주인이 찻잔을 내밀었다. 직접 기른 무농약 차란다. 시원한 걸 먹고 싶은 마음을 읽은 것일까. 자두와 비슷한 양메이(楊梅)라는 과일까지 내왔다. 동네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표정과 몸짓으로 알 수 있었다. ‘당신을 환영합니다.’ 때묻지 않은 웃음과 넉넉한 인심에 저절로 얼굴이 펴졌다.

◆두 마리의 용, 선룽구(神龍谷)

차가 급커브를 그리며 산길을 올랐다. 아래로는 끝을 알 수 없는 계곡이 펼쳐졌다. 안전벨트를 매지 않아도 될까, 점점 걱정이 됐다. 기사나 가이드 모두 별 말이 없었다. 대륙적 기질이 이런 건가. “선룽구엔 갈 만해요?” 불안을 달래며 물었다. “3단 폭포가 있어요.” 가이드는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보여줬다. 1단 60m, 2단 80m, 3단 120m. 1단과 2단 폭포 사이엔 경사지가 있다. 전체 낙차는 약 300m. 중국 제1 고폭(高瀑)으로 불린다고 했다. 절벽에 걸린 흰 물줄기가 용이 승천하는 것 같다는데 아무래도 과장인 듯했다.

폭포는 볼 만했다. 굉음을 내며 떨어지는 물줄기가 통쾌하고 시원했다. 숨이 턱턱 막히는 더위가 싹 가셨다. 어느 미술가는 폭포를 산속 미인이라고 했다는데, 참 담박한 성격의 여인이겠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번갈아 가며 계곡 길이 이어졌다. 머리 위, 발 아래로 온통 초록 물결. 400여년 전 탕현조는 이곳을 배경으로 ‘모란정’을 썼다. 생사를 넘나드는 남녀의 사랑 이야기다.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정자마다 그의 작품명을 이름으로 내걸었다. 3단 폭포가 한눈에 보이는 정자에서 걸어온 길을 돌아봤다. 깜짝 놀랐다. 지금까지 잔교(棧橋)를 걷고 있었다. 해발 800~1500m를 구불구불 5㎞나 이은 구름다리다. 이 계곡엔 절벽을 오르는 용뿐만 아니라 산허리를 감싸고 도는 용도 있구나. 자연의 솜씨보다 길을 뚫은 인간의 의지가 더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친환경 마을, 훙싱핑(紅星坪)

“더위에 고생하셨습니다. 이제 온천으로 갑니다. 수영도 할 수 있답니다.” 가이드의 말에 환성이 터졌다. 저수량 22억, 우시강(烏溪江)댐 건설로 만들어진 호수를 가로질러 30분. 훙싱핑에 닿았다. 황토에 붉은기가 섞여 별처럼 보인다고 해서 붉은별이란 이름이 붙었다. 온천 도가촌(度假村)이란 간판이 보였다. 온천을 발견한 광산업체와 정부가 합작해 만든 리조트다. 폐교와 마을 지형을 그대로 살려 나지막이 건물을 지었다. 리조트를 뜻하는 도가에 촌을 붙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짐을 풀자마자 온천으로 향했다. ‘시원한 냉탕에 뛰어들어야지.’ 그런데 야외풀, 실내풀 모두 따뜻하거나 미지근했다. ‘아, 여긴 수영장이 아니라 온천이지.’ 닥터 피시가 있는 탕에 발을 담그고 아쉬움을 달랬다.

훙싱핑에서 배로 10분 거리인 황니링(黃泥嶺)은 유기농법의 메카다. 마을 어귀에 시범단지가 있었다. 오리들이 논을 휘젓고 다녔다. 이곳은 들판에 풀어놓고 기르는 토종닭이 유명하다. 점심을 먹으러 민가에 들어서니 식탁 가운데 닭탕이 끓고 있었다. 고기는 부드러운데 뼈가 많아 먹기 성가셨다. 모든 음식에 조미료를 넣지 않는다고 했다. 친환경 마을다웠다.

◆쑤이창의 미소, 첸포산(千佛山)

‘미소 짓자, 쑤이창을 더욱 아름답게(Better Smile Better Suichang).’ 현(縣)정부의 모토를 프린트한 셔츠를 입은 현지 안내원이 성큼성큼 앞서 갔다. 섭씨 40도에 육박하는 더위에 비 오듯 땀이 흘렀다. 계곡을 흐르는 물줄기가 그나마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산 입구 호텔 로비엔 시진핑(習近平) 부주석이 시찰와서 찍은 사진이 한쪽 벽을 채우고 있었다. 그래선가. 완벽히 정돈된 관광지라는 인상을 받았다. 나무마다 이름을 매달고 있었고 계단은 안전했다. 부처님 손바닥을 형상화한 돌의자도 곳곳에 있었다. 길 위에 드리워져 진로를 방해하는 나무엔 ‘머리 숙여 예불하시오’란 팻말까지 붙었다. 돌아올 때 보니 그 팻말의 반대쪽엔 단순히 ‘머리 주의’라고 쓰여 있었다. 중국인들, 이젠 디테일까지 신경 쓴다.

그렇게 산길을 따라 30여분. 왼쪽 저 높이 인자한 미소를 짓는 부처님이 보였다. 높이 300m의 바위산에 새긴 얼굴. 33m의 미륵불. 크지만 위압적이지 않았다. 보면 볼수록 마음이 푸근해졌다. 그리고 오버랩되는 얼굴들. 낯선 손님에게 차와 과일을 대접하던 반링춘의 아줌마. 반갑게 손을 흔들던 황니링의 농부. 누런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던 난젠옌 산장의 청소원. 큰 바위 얼굴에 담긴 쑤이창 사람들의 미소가 오후의 햇살과 함께 멀리 퍼져 나갔다. 마음 속으로 작별 인사를 건넸다. “고마워요. 우리가 잃어버린 것을 간직하고 있어서. 오래오래 기억할게요. 짜이젠 쑤이창(再見遂昌).”

[여행 팁] 독한 산모기 조심…위안화 꼭 챙겨야

쑤이창현은 아열대 기후에 속한다. 여름철엔 무척 덥고 습하다. 섭씨 35도를 훌쩍 넘는다. 모자와 선크림은 필수. 산속 모기에 물리면 1주일은 고생한다. 모기 퇴치제와 벌레에 물렸을 때 사용할 소독약을 챙겨야 한다.

주민들이 여행객을 환대하지만 빈집에 불쑥 들어가면 실례다. 다짜고짜 카메라를 들이대는 행동도 삼가야 한다. 차와 과일 대접을 받고 나서 담배나 과자로 답례하는 게 좋다. 돈은 받으려고 하지 않는다. 원화와 달러는 무용지물. 반드시 위안화로 바꿔 가야 한다. 1위안은 약 180원. 진에어가 인천공항과 닝보공항을 잇는 전세기를 운항한다. 월· 금요일 출발. 쑤이창현이 한국보다 한 시간 늦다. 한국이 오전 10시면 쑤이창은 오전 9시.

레드팡닷컴은 지난 3일 쑤이창현 정부와 5년간 관광사업총판 계약을 맺었다. 문의 (02)6925-2569

쑤이창=고호진 기자 g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