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과 배신의 세계 '담합'] 과징금 부과 7년새 20배나 폭증…의욕만 앞선 조사로 빈축 사기도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10월 ‘역지급합의’라는 새로운 형태의 담합 사건을 적발했다. 동아제약이 세계 4위 다국적 제약사인 GSK가 개발한 항구토제 신약 ‘조프란’의 복제약을 출시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조프란의 신약 판매권을 받기로 했다는 것. 공정위는 GSK에 30억4900만원, 동아제약에 21억2400만원의 과징금을 각각 부과했다.

◆담합조사 전방위로 확대

전문가들은 이 사건에 대해 공정위가 최근 ‘담합’의 적용범위를 넓히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분석했다. 지금까지는 단순히 가격과 생산량, 제품 출고시기 등을 조정하는 것만 담합으로 봤다. 하지만 최근 기업들이 엄청난 규모의 과징금과 기업 이미지 실추에 대한 두려움에 보다 지능적인 방식으로 담합을 시도하는 행태를 보이자 공정위도 담합의 범위를 점차 확대하고 있는 추세다.

공정위는 “담합 의도가 없이 정보 수집을 목적으로 경쟁사를 접촉해도 담합의 범주 안에 들어간다”며 “메신저, 이메일, 전화통화 등도 모두 담합의 증거가 될 수있다”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최근에는 해당 기업이 경쟁사의 정보를 갖고 있을 경우에도 가격 담합을 위한 상호 정보를 교류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담합사건 리니언시 비율 85%

공정위가 지난해 처리한 담합 사건은 총 134건이다. 1981년부터 1990년까지 10년간 적발된 담합은 51건에 불과했지만 이후 상승세를 타기 시작해 2004년 한 해 35건이었던 담합 건수는 2011년 71건으로 증가했다. 과징금 부과액수는 더 큰 폭으로 늘어나 2004년 291억원에서 지난해 5710억원으로 7년 사이에 20배 가까이 폭증했다.

이 같은 양상은 담합이 만연해 있기도 하지만 정부의 단속 의지가 워낙 강하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특히 2005년부터 도입한 ‘리니언시제도’가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 공정위가 처리한 담합 중 리니언시가 적용된 사건은 2007년 41.7%에 그쳤지만 지난해 85.2%까지 뛰었다.
[탐욕과 배신의 세계 '담합'] 과징금 부과 7년새 20배나 폭증…의욕만 앞선 조사로 빈축 사기도
공정위가 2010년 6개 액화석유가스(LPG) 수입·공급업체의 가격담합을 적발할 수 있었던 것도 SK에너지와 SK가스의 자진신고 덕분이었다. 2008년 4월 공정위는 국제LPG 가격이 연초에 최고점을 찍고 떨어졌는데도 국내 LPG 가격에 변화가 없자 조사에 착수했고 SK에너지와 SK가스는 곧 바로 담합 관련 자료를 들고 ‘자수’했다.

◆공정위, 법원서 패소하는 경우 많아

담합 적발 건수가 많아지면서 단순히 ‘카르텔’이라고 규정짓기엔 복잡한 양상을 띠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 때문에 ‘억울하게’ 담합 기업으로 찍힌 기업들의 불만도 상당하다. 정부 행정지도의 결과로 담합한 경우가 대표적이다. 주로 주류·식품·방송통신 업계에서 찾아볼 수 있다.

2009년 7월 방송통신위원회의 행정지도를 받던 KT와 SK브로드밴드는 시내전화 요금과 시장점유율 등을 담합했다는 이유로 1152억3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자 곧바로 행정소송에 들어갔다. 지난 3월 라면값 담합으로 적발된 농심·오뚜기·한국야쿠르트 등 라면 제조업체들도 “그동안 농림수산식품부의 가격 통제를 받아온 것을 담합으로 규정했다”며 강력 반발, 소송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공정위는 이 같은 행정지도가 담합의 면죄부가 될 순 없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 주목되는 법원판례가 하나 있다. 국세청의 행정지도에도 불구, 2009년 소주값을 담합했다는 이유로 과징금을 부과받은 소주업계가 제기한 소송에서 대법원은 업계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지난해 6월 “현재 소주가격 인상은 주세보전명령권을 가진 국세청의 승인 없이 불가능하다”며 “업체들이 합의해 내놓은 인상폭을 국세청이 줄인 점 등을 고려할 때 공정위는 250억원에 이르는 과징금을 취소해야 한다 ”고 판결했다.

■ 담합(카르텔)

2인 이상의 사업자가 시장에서 경쟁을 통해 결정되어야 할 판매·입찰가격, 거래조건, 생산량 등을 합의를 통해 공동으로 결정하는 것을 뜻한다. 사업자 간에 계약ㆍ이메일·전화통화·친목모임 등 어떤 형태로든 의사를 주고받았다면 모두 담합에 포함된다. 담합을 직접 하지 않더라도 다른 사업자로 하여금 담합을 하도록 했다면 이 또한 담합 가담자로 간주된다.

■ 리니언시(liniency)

담합 자진신고자 감면제. 내부 고발을 이끌어내기 위해 담합 혐의가 있는 기업들 중 먼저 자백하는 기업에 대해 처벌강도를 낮춰주는 제도. 미국 유럽 등에서도 시행되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경우 1순위로 자진 신고하면 과징금 전액을,2순위는 50%를 각각 면제해준다.

박신영/임현우/정성택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