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발전소 안전성 논란이 올여름 전력 관리의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가 지난 4일 고리 원전 1호기의 안전성 검증을 마치고 재가동을 승인했지만 지역주민과 시민단체의 반대로 원전을 돌리지 못하고 있어서다. 고리 1호기를 빨리 가동하지 못하면 전력 수요가 정점에 달할 다음달 중순 블랙아웃(대정전) 위기가 올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원자로 용기 안전성 논란

지식경제부는 최근 주민들이 추천하는 전문가들과 함께 고리 1호기의 안전에 대해 공동 점검하기로 했다. 국가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이미 안전하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지역주민들이 이를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시민단체들이 안전성에 대해 우려하는 시설은 원자로 압력용기다. 이노 히로미쓰 도쿄대 명예교수는 “고리 1호기는 용접 부위의 구리 함량이 높아 다른 원자로에 비해 깨지기 쉬운 재질”이라며 “핵 발전 과정에서 나오는 중성자를 오랫동안 맞으면 압력용기가 유연성을 잃고 굳어 파괴되기 쉬운 상태가 된다”고 위험성을 제기했다.

이와 관련, 국내 전문가들은 이노 교수가 원자력 기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박윤원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장은 “이노 교수는 압력용기 온도가 100도를 넘으면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처럼 얘기하는데 미국 핵규제위원회(NRC)의 기준값은 149도이고 고리 1호기는 이보다 낮은 127도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도 고리 1호기와 같은 재질로 만든 원자로를 똑같은 방식으로 평가해 사용을 재연장했다”며 반박했다.

주민들은 원전을 운영하는 한국수력원자력 직원들의 전원설비 고장 은폐, 납품 비리 사고 등에서 드러난 안전 불감증도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이와 관련, 최근 한수원은 △모든 원전 본부장의 사내외 공모 △해외 원전 전문가 영입 △원전 운영 매뉴얼 개편 △대국민 소통참여센터 설치 등의 개선책을 내놓았다. 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수원이 신뢰를 깬 것은 잘못된 것이지만 이것 때문에 과학자들이 내린 안전에 대한 결론까지 매도해서는 안된다”며 “비행기를 탈 때 정비가 잘됐다고 믿고 이용하듯 원자력 안전에 대한 국가의 판단을 주민들이 믿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8월 중순 블랙아웃 위기 예상

고리 1호기 가동을 시급히 결정해야 하는 이유는 여름철 전력관리 때문이다. 정부는 다음달 7854만㎾ 수준의 전력공급 능력을 확보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이 같은 목표는 58만㎾급 고리 1호기의 가동을 전제로 한 계획이다. 다음달에도 고리 1호기를 가동하지 못하면 8월 중순 전력 수요가 정점(7700㎾)에 달할 때 예비 전력이 100만㎾ 밑으로 내려갈 수 있다. 24일 오후 3시에는 최대 전력 수요가 7313만㎾로 올여름 최고치를 기록했다. 대비책을 세우지 못하면 블랙아웃 우려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태훈 기자 tae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