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HO 원칙 이행 요구하며 `공론화' 주력..남북 공조 모양새
이르면 3일 의제 채택…결론 없이 끝날 가능성도


한국과 일본이 유엔 무대에서 `동해'와 `일본해'의 병기를 놓고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유엔본부에서 제10차 유엔 지명표준화회의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개막된 가운데 우리 정부는 회의 첫날부터 국제수로기구(IHO)가 표준화회의에 제출한 보고서에 대해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2개국 이상이 공유하는 지형에 이해 관계국들이 다른 이름을 갖고 있을 경우 공통된 명칭의 합의에 노력하고, 합의가 안되면 2가지 이름을 병기하라는 1977년 IHO 결의가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정부 대표단 관계자는 1일 "스스로 채택한 결의가 이행되지 않고 있음을 환기시키고, 진지한 노력을 했더라면 더 나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겠느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밝혔다.

이날 우리 측은 의제에 충실한다는 차원에서 `동해'라는 명칭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북한은 곧바로 `조선 동해' 또는 `동해'의 병기를 요구했다고 한다.

대표단 관계자는 "결과적으로 우리와 북한이 공조를 취하는 모양새로 가고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일본 측은 동해와 일본해 병기의 근거가 없다며 남북한의 주장이 지지를 얻을 수 없다는 반론을 폈다.

9일 종료되는 이번 회의에서 동해 표기 관련 논의는 오는 6일로 잡혀 있으며, 3일로 조정될 가능성도 있다.

현재로서는 분위기가 좋은 편이지만 결과는 예단하기 어렵다.

대표단 관계자는 "우리 주장이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근거가 충분한 만큼 많은 회원국들이 내심 우리를 지지하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공개적인 지지 요청을 하기는 쉽지 않다"고 했다.

그는 "우리와 일본이 한치도 양보할 수 없는 외교전을 벌이는 사안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국가가 분쟁에 말려들지 않으려고 몸을 사리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유엔 지명표준화회의는 전 세계 지명의 표준화와 용어 정의, 표기방법 등을 논의하는 국제회의로 5년마다 유엔본부에서 열린다.

IHO는 유엔 산하기구가 아니기 때문에 유엔 지명표준화회의가 동해 병기를 `지시'할 권한은 없다.

그러나 유엔과 IHO가 긴밀한 협력관계에 있고 이번 회의 결과가 IHO는 물론 세계적인 지도제작 업체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우리 정부로서도 모든 외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이번 회의에 IHO가 관련 보고서를 제출한 것도 유엔의 독보적인 권위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IHO는 지난 4월 총회에서 해도집(海圖集) '해양과 바다의 경계'의 제4판 발간 결정을 2017년까지 유보했다.

따라서 '일본해'가 단독표기된 이 해도집(3판)에 5년 뒤 열리는 차기 총회 때까지 '동해'가 병기될 수 없게 됐다.

해도집 3판은 1953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총회 당시 일본 측은 합의가 되지 않은 내용은 그대로 둔 채 4판 발간을 주장했으나 어떤 회원국의 지지도 받지 못했다.

국제 무대에서 우리 정부의 독도와 동해 문제에 대한 접근법은 약간 다르다.

독도는 우리가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이유가 없다는 입장인 반면, 동해는 일본에 주도권이 있어 최대한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이다.

우리 정부는 1992년 제6차 유엔 지명표준화회의에서 처음으로 동해 표기 문제를 제기했으며, 이후 지속적으로 일본해와 동해의 병기를 주장하고 있다.

대표단 관계자는 "이번 회의에서 결론이 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일본해 단독표기가 부당함을 최대한 부각시키고 우리에게 유리한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전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엔본부연합뉴스) 정규득 특파원 wolf85@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