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 쭤 정룽 서우수 샹 김태희(김태희처럼 똑같이 수술해 주세요).” 17일 서울 압구정역 5번출구에 있는 I병원에서 만난 중국인 장모씨(23)는 병원 측에 이렇게 말했다. 성형블로그에서 I병원 시술후기를 보고 한국을 찾았다는 장씨는 한류스타 김태희와 같은 턱선을 만드는 게 꿈이라고 했다. 그는 병원이 마련해 준 차량으로 공항에서 곧바로 이곳에 도착, 중국인 전담 간호사의 안내를 받으며 입원실로 향했다.

서울의 전체 성형외과와 피부과 중 절반이 밀집한 ‘뷰티 밸리’ 강남구. 2000년대 후반부터 이 지역은 ‘의료한류’의 메카로 확실히 자리잡았다. 20·30대 국내 여성들이 주로 찾던 이곳이 최근 들어 성형 시술을 받기 위해 몰려온 외국인으로 붐빈다. 이들을 유치하기 위한 병원 간 경쟁도 뜨겁다.

◆“외국인 유치가 병원 성패 좌우”

강남구에 따르면 지난해 관내 병원을 찾은 외국인 환자는 2만4535명. 2010년(1만9135명)에 비해 28.2% 증가했다. 지난해 서울 병원을 찾은 전체 환자 수(7만7858명)의 31.5%에 달한다. 외국인 환자가 지난해 낸 진료비는 453억원으로, 1인당 평균 진료비는 194만원. 하지만 이 수치는 의료관광 협력기관으로 정식 등록된 238개 의료기관 대상이다. 등록되지 않은 병원까지 합치면 연간 외국인 환자 수는 최소한 5만명이 넘고, 진료비도 그 두 배를 웃돌 것이라는 게 강남구 관계자의 설명이다.


외국인 환자를 가장 많이 유치하는 곳은 성형외과와 피부과다. 지난 6월 기준으로 서울 성형외과 피부과 병원 835곳 중 강남구에만 49.8%인 412개가 몰려 있다. 성형외과의 강남구 집중도는 71.7%(292개). 외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병원도 성형외과 피부과로, 전체 진료과목 중 20.1%에 달한다. 이어 △내과 △건강검진 △산부인과 △한방과 △치과 △안과 순이었다.

양악수술로 유명한 I병원은 하루평균 20여명의 외국인 환자가 찾는다. 이 중 70% 이상이 중국인으로, 비싼 비용이 드는 ‘VIP 진료’를 신청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I병원 관계자는 전했다. 이 때문에 중국인 환자들에겐 중국어에 능통한 전담 간호사가 상주해 상담부터 병원생활 전반을 관리해 준다.

인근 G성형외과에선 중국어뿐 아니라 영어 일본어 소통이 가능한 직원들이 안내데스크에 배치돼 있다. 다른 성형외과 피부과 병원들도 해외 언론을 통해 홍보하거나 홈페이지를 중국어 영어 일본어 등으로도 제공한다.

◆병원의 대형화·고급화 추세 강화

강남 병원들이 외국인 환자 유치에 매달리는 이유가 뭘까. 한 성형외과 원장은 “국내 환자들에 비해 대부분의 외국인이 VIP 신청을 하는 등 많은 돈을 쓴다”며 “경쟁이 치열한 강남에선 외국인 환자 유치가 병원 성패를 좌우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외국인 환자가 늘면서 강남 병원도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이병철 닥터피알 대표는 강남 병원들이 2000년대 중·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대형화·고급화 추세로 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내국인 환자 유치와 함께 외국인 VIP를 끌어들이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는 게 이 대표의 설명이다.

B성형외과는 2010년 강남대로변 일대에 신축 중인 14층 건물의 8개층을 매입했다. 건물 매매가는 수백억원을 호가하지만 병원을 짓기 위한 이런 규모의 계약은 부동산 시장이 불황을 겪고 있는 최근에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R성형외과는 올 4월 강남역 인근에 있는 지하 3층, 지상 15층 규모의 건물에 지점을 열었다.

‘고급 호텔’과 ‘병원’을 합친 ‘메디텔’의 등장도 눈길을 끄는 변화다. 강남구에 따르면 리츠칼튼호텔을 비롯해 그랜드인터컨티넨탈 임피리얼팰리스 코엑스인터컨티넨탈 롯데호텔월드 등 강남 일대 5개 호텔에 병원 11곳이 들어서 있다. 진료 과목은 주로 성형외과와 피부과.

호텔에서 편하게 쉬면서 치료받을 수 있는 데다 외부 노출을 최소화하면서 병원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인기다. 지난해 11월 리츠칼튼에 개원한 ‘포썸프레스티지’는 개원 당시 10% 정도였던 외국인 환자 비율이 50% 수준까지 늘었다. 이 병원이 5월 마련한 안티에이징(노화 방지) 투어 패키지 행사엔 중국 부유층 180여명이 전세기로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강경민/하헌형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