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월6일과 12월19일, 한 달여 간격을 두고 치러지는 미국과 한국 대통령 선거. 두 나라 모두 선거 분위기는 한껏 달아올랐지만 선거 내용은 천양지차다. 미트 롬니 공화당 후보와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맞붙은 미국 대선은 가치와 이념 싸움이다. 재정, 감세, 복지 등 현안을 놓고 두 후보의 입장차가 뚜렷하다. 공화당은 보수를, 민주당은 진보를 확실히 대변하고 있다.

한국은 전혀 다르다. 가치와 이념보다는 색깔과 이미지 정치로 승부하고 있다. 표를 잡기 위해 쏟아내는 정책과 구호에서 보수가 사라진 지 오래다. “여야가 서로 좌클릭 경쟁을 벌이는 형국”(박명호 동국대 교수)이다.

당장 경제민주화 논쟁만 해도 그렇다. 여전히 실체와 개념이 모호한 경제민주화는 야당(통합민주당)이 먼저 제기했지만, 뒤늦게 뛰어든 여당(새누리당)이 주도권을 잡으며 오히려 야당보다 한발 더 나가고 있다. 새누리당 내에서 추진 중인 금산분리(금융자본에 대한 산업자본 지배 규제)가 대표적이다. 현재 은행에만 적용하는 금산분리를 보험·증권·카드 등 제2금융권으로 확대하자는 것이 핵심인데, 야당조차 수위가 너무 높다며 깜짝 놀라고 있다.

경기를 살리기 위한 재정 지출이나 감세 등에서도 보수를 대변하는 정책은 사라졌다. 미국 공화당은 민주당의 재정 지출 확대 및 양적완화 요구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정부 지출 확대가 오히려 민간 시장 기능을 위축시키고 왜곡해 경제 회복에 도움이 안 될 뿐더러 결국 재정적자를 쌓이게 한다는 논리에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오히려 보수를 대변하는 여당이 앞장서 돈을 더 풀라고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올해 집행을 앞둔 예산으로는 부족하니 추가로 예산을 더 편성해 어려운 국민을 도와주자는 것으로 선거를 앞둔 전형적인 포퓰리즘(대중 인기영합주의) 정책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세제 개편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대기업과 고소득자 증세 역시 보수 여당과 야당 간 입장 차이가 모호하다. 반면 미국은 부자 증세를 놓고 민주, 공화 양당이 치열한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한국은 정당정치 역사가 짧은 데다 그동안 남북관계가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유일한 기준이었다”며 “이념 정당이 클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 또한 약하다”고 지적했다.

정종태 기자/워싱턴=장진모 특파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