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경화 치닫는 日…한국 압박카드 줄줄이 빼들 채비
일본 정부가 독도 영유권 문제와 관련한 강경 대응책을 본격적으로 내놓기 시작했다. 한국 정부에 21일 구상서를 통해 제안한 ‘국제사법재판소(ICJ) 공동제소’ 방안은 그 첫 신호탄이다. 일본 정부의 각 부처가 마련한 추가 대응책은 이미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의 책상에 놓여져 있는 상태다. 한국 정부의 반응에 따라 하나하나 빼 드는 일만 남았다. 일본 언론들은 이번주 안에 ICJ 제소 이외의 여러가지 방안이 확정·발표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국수주의로 달려가는 일본

노다 총리는 지난주 외무성 총무성 경제산업성 등 주요 부처에 한국과 관련한 사업과 행사 등을 종합 정리해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결과물은 이날 열린 각료회의에 제출됐다. 지금까지 일본 언론 등을 통해 슬금슬금 흘러 나왔던 보복조치들이 공식적인 검토절차에 들어간 것이다. 각료회의에서는 △한·일 통화스와프(맞교환) 규모 축소 △액화천연가스(LNG) 공동조달 방안 재검토 △한·일 자유무역협정(FTA) 교섭재개 연기 등 독도문제와 관련한 다양한 추가 대응책도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노다 총리가 독도 문제를 강경 일변도로 밀어붙이는 데는 크게 두 가지 해석이 따른다. 우선 노다 총리의 기본적인 정치색이 보수 우익에 가깝다는 점이다. 일본 육상 자위대 출신의 아버지를 둔 노다 총리는 진보성향의 민주당에 몸을 담고 있긴 하지만 역사관은 지극히 보수적이다. 야당의원 시절이던 2005년엔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된 A급 전범은 전쟁 범죄자가 아니므로 신사참배는 문제될 게 없다”고 말했을 정도다.

민주당이 선거를 앞두고 수세에 몰려 있다는 것도 ‘우경화’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소비세 인상을 둘러싼 갈등과 의원의 잇따른 탈당으로 지지율이 20%대 이하로 떨어진 노다 총리 입장에서는 영토문제에 대해 강경대응을 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일본의 차기 총리감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오사카 시장(오사카유신회 소속·사진)이 이날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성을 부정하는 망언을 한 것도 선거를 의식한 측면이 크다. 자민당 등 일본 야당은 이번 정기국회가 끝나는 9월 초까지 집권 민주당으로부터 중의원 해산을 이끌어낸다는 전략이다.

◆내부에선 속도 조절론도

일본 정부가 만지작거리고 있는 보복조치에는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에도 피해를 주는 ‘양면적인’ 성격의 대책들이 적지 않다. 한·일 통화스와프(맞교환) 등 경제분야와 관련한 조치가 대표적이다. 통화스와프 규모를 줄이면 일본 산업계가 가장 골머리를 앓고 있는 ‘엔고(高)’가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한·일 FTA 역시 한국보다 오히려 일본에 더 필요하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원전 가동 중지로 화력발전 비용이 증가하고 있는 일본 입장에서 한·일 LNG 공동구매 방안도 쉽사리 내치기 힘든 정책이다.

일본 정부 내에서도 신중론이 제기되는 분위기다. 독도문제의 불똥이 경제보복으로 이어지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다. 마쓰시타 다다히로(松下忠洋) 금융상은 경제관련 조치에 대해 “양국 정부가 냉정하고 침착하게 판단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통화스와프 등은) 필요하니까 있는 제도이므로 면밀히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일본 정부가 당초 불참하려던 계획을 변경해 이날 중국 칭다오에서 열린 한·중·일 FTA 2차 실무협의에 참석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도쿄=안재석 특파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