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배심원 '텃세'에 삼성 '패배'] "과도한 디자인 특허는 혁신 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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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가 보는 배심원 평결
판사조차 특허 가리기 곤란…소비자 부담 늘어날 수도
판사조차 특허 가리기 곤란…소비자 부담 늘어날 수도
애플에 완승을 안겨준 캘리포니아 북부지방법원 배심원들의 평결에 대해 전문가들은 “정보기술(IT) 업계의 혁신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 소비자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과도한 특허 공세로 시장의 자유로운 경쟁이 위축되고 특허비용 부담이 늘면 제품 가격이 오를 수 있다는 얘기다.
댄 길머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교수는 가디언에 기고한 글에서 “(애플) 아이폰 이전에 선행 디자인이 있었다는 증거가 나왔는데도 애플 디자인 특허가 모두 유효하다고 판단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길머 교수가 말한 ‘선행 디자인’은 애플이 아이폰을 내놓기 반년쯤 전에 삼성이 전시회에서 공개한 ‘F700’을 말한다. F700은 홈스크린 아이콘 배열이 아이폰과 비슷하다.
길머 교수는 “애플이 (삼성전자가 속해 있는) 안드로이드 진영을 파괴할 수 있도록 면죄부를 줬다”고 지적했다. 애플과 경쟁하는 안드로이드 진영이 있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더 좋은 스마트폰을 더 싼 가격에 살 수 있게 됐는데, 애플이 이런 경쟁관계를 근본적으로 파괴하는 데 법원이 일조를 했다는 지적이다.
연방상고법원 판사이면서 시카고 법대 교수인 리처드 포스너는 삼성전자와 애플 간 특허소송 재판이 한창인 지난달 ‘애틀랜틱’에 기고한 글(미국에는 왜 너무 많은 특허가 있는가)에서 “미국 특허제도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며 “개선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미국 특허법에서는 일반적으로 특허에 대해 20년간 독점을 허용하는데 특허가 유용하냐를 놓고 법정 소송이 끊이질 않는다”며 “판사조차 어느 기업이 먼저 개발했는지 판단하기 어렵다”고 썼다. 또 “소송에 휘말릴까 우려하다 보면 혁신이 위축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관동대 명지병원 정지훈 교수(IT융합연구소장)는 “지식이라는 것은 창조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창조한 사람은 투자를 했기 때문에 보상을 받아야 한다”며 “하지만 지식재산권 관련 법이 미국에서 제정된 지 30년이 넘으면서 현실과 동떨어졌다”고 비판했다. 그는 “과도한 특허가 디지털 경제의 특성인 창조와 혁신을 퇴보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또 “디지털 경제는 간단히 전송하고 복제하고 보관할 수 있어 다양한 추가적인 창조를 유도할 수 있다”며 “개방성을 장려하는 방향으로 지식재산권을 수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애플의 특허소송 같은 행위가 기술 발전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애플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도 젊은 시절 피카소의 말을 인용해 “좋은 예술가는 베끼고(copy)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steal)”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애플 역시 노키아의 통신기술 특허를 침해해 4년에 걸친 법정소송 끝에 배상금을 물고 지난해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찰스 아서 영국 가디언 IT 에디터는 최근 발간한 ‘디지털 워’라는 책에서 ‘스마트폰의 미래를 위협하는 한 가지를 꼽으라면 그것은 단연코 특허일 것’이라고 썼다.
김광현 IT전문기자 kh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