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과 유가증권 등 다른 금융상품들은 모두 거래세를 내는데 유독 파생상품만은 못 내겠다는 주장이 얼마나 일리가 있을까. 증권거래세법은 거래세 부과 품목을 나열하는 열거주의로 시장에 새로운 금융상품이 나오면 목록에 추가하는 방식이다. 이 법이 제정된 1978년 당시에는 파생상품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자연히 거래세 부과 대상으로 열거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금융시장에 파생상품이 들어온 지 15년이 지났고 파생상품 거래 규모가 세계 1위로 도약한 지금은 다른 금융상품과의 형평성 차원에서도 거래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주장이 국민적 공감대를 얻어가고 있다.

파생상품에 과세하겠다는 법안이 여야 합의로 18대 국회에서 기획재정위와 법사위를 통과했다. 당시 법안의 골자는 파생상품에 거래세를 부과하되 고정세율을 정하지 않고 시장이 나빠지면 세율을 내릴 수 있도록 탄력세율로 한다는 것이었다. 또 첫 3년간은 세금을 일절 매기지 않고 3년 후에도 ‘시장상황이 좋으면’이란 단서 하에 십만분의 1의 세금을 매긴다는 것이었다.

법안은 본회의의 벽을 넘지 못했다. 통과시키면 총선에서 표로 심판하겠다는 업계의 위협 때문이었다. 그러나 총선이 끝나자마자 다른 금융상품과의 과세 형평성 차원에서 파생상품에도 과세해야 한다는 주장이 여야 모두에서 나온다. 조세 정의와 경제민주화를 이유로 이런 주장은 힘을 얻고 있다.

"거래세, 대만이 유일"은 왜곡…美 등 최고 40% 자본이득세

파생상품학회 등 일부 학자들과 업계는 여전히 파생상품 거래세 부과를 반대하고 있지만 이들의 주장은 논리적으로 옳지 않다. 반대 이유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시장이 위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식과 유가증권에 거래세가 부과되고 있다. 당시에도 시장이 위축된다는 논리로 반대가 심했지만 현재 우리 주식시장은 0.15%의 거래세를 부과하는데도 코스피지수는 2000을 넘나들고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현재 제출된 정부안과 여당안에 따르면 파생상품에 부과되는 세율은 십만분의 1에 불과하고 또 거래세가 부담이 될 정도로 시장이 나빠지면 세율을 대폭 낮출 수 있는 탄력세이기 때문에 거래세 부과가 시장을 위축시킨다는 것은 기우다. 파생상품시장이 성장 궤도에 진입한 뒤 거래세를 매기자는 주장도 있지만 이미 세계 1위 시장으로 성장했기 때문에 설득력이 떨어진다.

둘째, 거래세를 부과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 대만밖에 없고 대만도 거래세 부과로 시장을 싱가포르에 빼앗겼는데 왜 거래세를 부과하느냐고 반대하는 이들도 있다. 사실 왜곡이다. 우선 미국 등 다른 선진국들은 최고 40%나 되는 높은 세율의 자본이득세를 매기기 때문에 미미한 세율의 거래세를 매길 필요가 없다. 다른 선진국은 우리가 파생상품에 부과하려는 세율의 최고 4만배나 되는 세금을 매기지만 거래세란 이름으로 부과하지 않을 뿐이다. 거래세를 부과하는 나라가 전 세계에 대만밖에 없다는 주장은 마치 다른 나라들은 파생상품에 일절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 것처럼 사실을 오도한다.

거래세 때문에 파생상품시장이 대만에서 싱가포르로 넘어갔다는 주장도 성립될 수 없다. 대만 주가지수선물상품은 대만시장에 상장되는 그날부터 거래세를 부과했다. 뿐만 아니라 대만은 우리의 4배나 되는 높은 거래세를 부과하고 있는데도 파생상품시장은 급속히 성장, 지금 대만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54%로 먼저 상장한 싱가포르의 46%보다 높다. 대만의 거래세 부과로 시장을 싱가포르에 뺏겼다는 주장 자체가 사실이 아닐 뿐 아니라 파생상품거래세 부과 이후 대만시장이 오히려 싱가포르보다 더 성장했음을 보여준다.

셋째, 차라리 자본이득 과세면 동의하겠다는 반박도 나온다. 2004년 자본이득과세를 도입하려 했을 때 파생상품시장을 죽이는 악법이라며 저지시켰던 인사들이 이런 주장을 해 신뢰성이 떨어지지만 동의하기로 하자. 당연히 자본이득 과세로 전환해 나가야 한다. 그런데 아직 기초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아 다른 금융상품도 자본이득 과세를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인프라가 갖춰질 때까지 주식과 증권은 높은 거래세를 내고 파생상품은 안 내는 불평등을 지속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그것보다는 일단 거래세라는 틀 안에서 상품 간 과세형평성을 이루고 거래세 틀 자체를 자본이득 과세로 전환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세금의 1500배에 달하는 엄청난 수수료부터 내려야

넷째, 손실을 봐서 소득도 없는데 세금을 내는 거래세는 맞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그런데 주식의 경우도 손실을 봐도 세금을 내고 있으니 설득력이 떨어진다. 더구나 소득이 있을 때만 과세하는 자본이득 과세로 빨리 전환하기 위해서라도 파생상품에 대해서는 거래세 도입이 시급하다.

다섯째, 거래세수가 미미하기 때문에 실익이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거래세 부과의 목적은 세수 확보가 아니라 다른 금융상품 간의 과세형평성을 확립하려는 조세정의 차원이다. 또 세수가 미미하다는 주장은 거래세 부과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거의 없다는 뜻이기 때문에 파생상품에 과세하면 시장이 위축된다는 업계의 주장은 모순임을 스스로 드러낸 것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파생상품에 부과되는 세금 때문에 거래가 위축된다는 주장을 하려면 업계와 거래소는 세금의 1500배에 달하는 엄청난 수수료부터 내려야 할 것이다. 업계와 거래소가 받고 있는 수수료의 1500분의 1에 불과한 세금이 거래에 부담을 줘 시장을 위축시킨다면 그 1500배나 되는 수수료는 시장을 아예 무너뜨린다는 뜻인데, 시장은 무너지기는커녕 불과 15년 만에 세계 1위로 급성장했다. 수수료가 부당하게 높으니 내리라는 감사원의 거듭되는 권고에도 불구하고 수수료를 내리지 않는 업계와 거래소가 수수료를 조금만 내려도 거래세 부과로 인한 시장의 부담은 아예 없어진다.

자기들이 받는 부당한 수수료의 몇 천분의 일도 안 되는 세금이 부담이 돼 시장이 위축된다고 국회와 정부를 협박하기 이전에 수수료부터 내리고 다른 금융상품처럼 세금을 내는 것이 더 당당하지 않을까.

이혜훈 < 새누리당 최고위원 >

△서울대 경제학과 △미국 UCLA 경제학 박사 △박근혜 17대 대선 경선 후보 대변인 △여의도연구소 부소장 △국회 기획재정위 예산결산소위원장△17, 18대 국회의원(서울 서초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