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만 내던 은행 주택대출 300조…원금 상환 '폭탄' 터진다
이자만 내던 은행 주택대출 300조…원금 상환 '폭탄' 터진다
현직 금융통화위원이 한국 가계의 ‘소득 대비 대출 원리금 상환부담률(DSR)’이 너무 높다고 언급한 것은 그만큼 가계 대출의 원리금 상환 부담이 위험 수준에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실제 일정 기간 원금상환을 유예해 주는 거치식 대출 상품의 경우 올해부터 이자뿐 아니라 원금까지 함께 갚아야 하는 시점이 속속 도래하고 있다. 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2007년 말 222조원에서 지난해 말 306조원으로 폭증했다. 이 기간 이뤄진 주택담보대출 중 대부분이 최장 5년간 이자만 내도 되는 거치식 대출의 형태를 띠고 있는데, 이제 거치기간이 끝나가는 대출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원리금 부담 미국 추월

3일 미국 중앙은행(Fed)에 따르면 미국 가계의 DSR은 지난 1분기 10.98%를 기록했다.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부실 문제가 불거진 2007년 3분기(14.08%) 이후 3%포이트 이상 하락한 것이다. 미국 주택가격 하락으로 가계 대출이 감소하면서 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액이 줄어든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DSR은 거꾸로 올라가고 있다. 2010년 11.4%에서 지난해 12.9%로 높아졌다. 최근 DSR은 14%를 웃돈 것으로 추산된다. 한 금통위원은 “양국간 지표의 구성 내용이 달라 그 의미가 다를 수 있지만 가계부채의 위험성을 알리는 신호”라고 말했다.

실제 국내 가계의 원리금 상환 부담은 점점 더 높아질 것으로 우려된다.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306조원 중 올해 거치기간이 끝나는 국내 9개 시중은행의 분할상환대출(9개 시중은행 기준) 규모는 19조2000억원에 이른다. 이 금액은 거치기간이 속속 끝나면서 내년에는 24조6000억원, 2014년엔 37조50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은행들은 거치기간을 다시 연장해주는 대신 분할상환이나 일시상환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금융권의 관측이다.

한은도 이 부분의 심각성을 우려하고 있다. 박양수 한은 계량모형부장은 “이자상환비율만으로도 이미 소비에 영향을 주는 임계치를 넘은 상황”이라며 “원금 상환 부담마저 더해지면 소비는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도 “가계 원리금 부담 상승으로 소비 침체가 더욱 장기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올 상반기 민간소비 증가율(전년 동기 대비)은 1.4%로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2.6%에 크게 못미쳤다.

○세계 세 번째로 DSR 공표

한은은 앞으로 분기별로 가계의 원리금 부담 수준을 보여주는 DSR을 공표할 예정이다. 한은 관계자는 “내년부터 분기별로 정확한 DSR을 산정해 발표할 것”이라며 “현재 시험 편재를 거쳐 과거 DSR 수치에 대한 오류가 없는지 점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 세계적으로 DSR을 발표하는 국가는 미국 캐나다 등 2개국에 불과하며 한국이 세 번째이다.

한은은 분기별로 발표하는 국민소득 자료와 가계부채 규모, 금융기관의 대출 만기구조를 통해 얻게 될 원리금상환액 등을 통해 수치를 산정하게 된다. 지금까지 국내 DSR은 2010년부터 1년에 한 번씩만 발표되고 있다. 통계청과 한국은행, 금융감독원이 공동으로 연간 한 차례씩 전국 1만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하는 가계금융조사의 연간 원리금 상환액을 기초로 하기 때문이다. 그간 우리나라 가계대출은 이자만 내다가 만기에 원금을 한꺼번에 갚는 만기원금일시상환 방식이 대부분이어서 DSR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정부가 2016년까지 고정금리 분할상환 대출 비중을 30%로 높이기로 하면서 가계 원리금 부담을 볼 수 있는 지표의 필요성이 높아졌다.

또한 가계 원리금 부담 수준은 연체율 상승의 위험성을 알리는 신호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한은 관계자는 “정확한 DSR 수치가 분기별로 제공될 경우 가계 부채 관리에 유용한 지표로 쓰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정환 기자 ceoseo@hankyung.com

○ DSR(debt service ratio)

부채 보유 가구의 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 부담금 비율. DTI(debt to income:총부채 상환 비율)와 비슷한 개념이지만 DTI가 부채 총액을 상환 기간으로 나눠 원리금 부담액을 균등하게 산출하는데 비해 DSR은 당해 연도 실제 부담하는 원리금 부담액을 기초로 산정한다. 예를 들어 만기 10년짜리 일시상환 대출의 경우 원금을 상환하지 않는 9년간은 이자부담만 계산한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