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전력수요 급증으로 평소보다 서너 배 많은 10만~30만원대 전기요금 고지서를 받는 가정이 늘어난 가운데 7일에도 한국전력 고객센터는 폭주하는 문의·항의 전화로 몸살을 앓았다. 한전 관계자는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전기료 누진체계를 잘 모르고 있다”며 “아무리 설명을 해도 작년 또는 전달과 비교해 무조건 전기요금이 잘못 계산됐다고 우기니 막막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한전은 이에 따라 현행 6단계인 주택용 전기료 누진제를 3단계로 축소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지만 정부는 신중한 입장이다. 누진제 손질이 자칫 국민들의 절전의지를 떨어뜨릴 경우 전력수급 차질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은데다 전력을 과다하게 사용하는 고소득층의 부담만 경감시켜주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복잡한 누진체계 잘 몰라”

‘더 쓴 만큼 더 낸다’는 게 주택용 전기료 누진제의 핵심 내용이다. 예컨대 한 달에 평균 300㎾h의 전기를 쓰는 가정이 평소 여름철에 1㎾ 용량의 에어컨을 하루 평균 3시간씩 10일간 사용하다가 올여름에 8시간씩 20일간 사용했다면 총 전력소비량은 330㎾h에서 460㎾h로 130㎾h 늘어난다. 하지만 전기요금은 누진제 적용으로 종전 5만3960원에서 9만9542원으로 82.6% 껑충 뛰어오른다.

100㎾h 단위로 적용되는 누진요금이 3단계 누진구간(201~300㎾h)과 4단계 누진구간(301~400㎾h)에서 ㎾h당 179.40원에서 268.80원으로 100원 가까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 누진요금 격차는 4단계에서 5단계(401~500㎾h)로 갈 때 131원, 5단계에서 6단계(500㎾h 초과사용)로 넘어갈 때 279원으로 더 벌어진다.

올여름 대부분의 가정에 전기요금이 많이 부과된 이유는 18년 만에 찾아온 폭염으로 에어컨 사용 시간이 늘어나고 런던올림픽 시청 등으로 야간 전기사용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늘어난 전력소비량이 누진요금 체계와 맞물리면서 예상을 뛰어넘는 요금이 나온 것. 하지만 사전에 복잡한 누진체계를 인지하지 못한 소비자들의 거센 항의에 직면하면서 한전 측도 적잖은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전력소비 행태부터 바꿔야

정부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현행 누진제가 경제 성장과 산업의 발전흐름에 맞지 않다는 기본 인식은 갖고 있지만 누진제 재조정으로 인한 부작용도 만만치 않아서다.

우선 6단계 누진제를 3단계 또는 4단계로 완화할 경우 단계별 누진율 편차가 커질 수밖에 없어 ‘전기요금이 너무 비싸다’는 왜곡된 인식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또 전력사용이 많은 고소득층 가정의 부담은 줄어드는 반면 서민층의 부담은 오히려 커질 수도 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지금처럼 전기를 펑펑 쓰는 소비구조를 방치할 경우 발전소 건설 확대 등과 같은 정책만으로 전력공급난을 해소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지경부 관계자는 “누진제를 포함한 전기요금 체계는 전력수급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조정할 문제”라며 “내년 하반기까지는 전력난이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어 과도한 수준의 누진체계 손질은 힘들다”고 말했다.

결국 한전이 제시한 개편방안은 당장 실행하기 어렵고 내년 이후에나 다시 논의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

◆ 전기료 누진제

1973년 1차 오일쇼크를 계기로 절전 유도와 서민층 보호를 위해 도입됐다. 주택용 전기료에 한해 사용량에 따라 요금을 차등적용한다. 월 100㎾h 단위로 6단계로 나뉘는 현행 제도에서 최고 구간 요금은 최저 구간의 11.7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