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신용평가회사 가운데 무디스에 이어 피치가 엊그제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에서 AA-로 한 단계 올린 것은 환영할 낭보임에 틀림없다. 피치는 한국을 사상 처음 일본(A+)보다 높은 신용등급으로 올리는 동시에, 일본에는 오히려 등급 추가 강등 가능성을 경고했다. 대견해 할 일임에는 분명하다. 한국은 A등급 이상 국가 중 올 들어 신용등급이 올랐거나 복수의 신용평가사가 등급을 상향 조정한 유일한 나라다. 이는 단순히 외채 이자를 절약하는 차원이 아니라 한국 경제의 건강함을 국제적으로 공인받은 것이기에 앞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효과가 훨씬 더 클 것이다.

외환위기 당시 B-까지 추락했던 한국의 신용등급이 12계단이나 올라 세계 아홉 번째로 높은 나라가 됐다. 그러나 마냥 기뻐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무디스와 피치는 한국의 경제·재정적 안정성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올해 경제성장률이 고작 2.5%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주요 20개국(G20)의 평균 성장률(2.8%)보다도 낮다. 특히 1000조원의 가계부채 폭탄, 중소기업 대출이 많은 은행의 질적 악화, 북한의 갑작스런 붕괴 등은 실현 가능성에 관계없이 상시적인 위협요인이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포퓰리즘 입법과 반시장·반기업 캠페인이 판을 친다는 점이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 중인데도 연금 고갈 등 복지의 근본문제는 일언반구도 없이 당장 표가 될 퍼주기 공약에만 골몰하는 정치권이다. 이런 문제는 세계경제포럼(WEF)의 국가경쟁력 평가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144개 국가 중 한국이 현저히 뒤처진 분야는 정책 투명성(133위), 정치인 신뢰(117위), 정부 규제(114위) 같은 것들이다. 열등생(정치와 정부)이 우등생(시장과 기업)을 옭아매고 윽박지르고 발목을 잡고 있다는 얘기다. 다시 추락하지 말라는 보장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