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중앙은행(ECB)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그리스와 스페인 등의 국채를 금리에 상관없이 무제한 매입하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만기 3년 미만의 단기 국채를 채권 유통시장에서 직접 사들인다는 것이다. 유럽연합(EU) 역내 국채금리 격차가 확대되면서 금융시스템이 붕괴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가고 있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조치라는 것이 드라기 ECB 총재의 설명이다. 하지만 이 같은 조치는 본질적으로 위기의 시한폭탄을 EU 국가 전체에 떠넘긴 꼴이다. 유로존의 추락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라고 평가절하한 월스트리트저널이나 대담한 도박이라고 규정한 파이낸셜타임스(FT)도 이를 염두에 둔 것이다. FT는 매입 규모가 무제한이라는 것도 모럴해저드를 노정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유로존 경제는 지금도 추락하고 있다. 유로스타트가 발표한 2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확정치도 전분기 대비 -0.2%를 기록했다. 실업률은 줄어들지 않고 불확실성만 커져가는 상황이다. 더욱이 독일 연방은행과 독일 국민들도 국채 매입에 반대하고 있다. 유럽의 돈줄을 쥐고 있는 독일이다. 독일의 돈이 국채 매입에 많이 들어갈 것은 명약관화하다. ECB는 이전에도 몇 차례 재정위기 국가들의 국채를 매입한 적이 있지만 독일 연방은행의 반대가 거세 지난 3월 이후 중단한 바 있다.

독일 헌법재판소 역시 오는 12일 유럽의 안정화기구(ESM) 합헌 여부에 대한 판결을 내린다. 헌법 불합치가 결정날 경우 그리스 스페인의 퇴출이 현실화된다. 유로존의 고비는 아직 현재 진행형인 것이다. 이런 상황인데도 ECB는 각국의 생산성을 높이려는 정공법을 외면한 채 결국 돈을 풀어 위험을 모면하려 시도한다. 무한정의 국채 매입이라지만 갚는 나라가 없다. 아랫돌을 빼서 윗돌을 괸다는 형국이다. 복지 천국 그리스와 스페인의 장래가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