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과장 & 李대리] 유학파 후배, 사사건건 "일본에서는…" 토 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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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붕'오피스
'갸루상' 그녀, 붙인 눈썹이 회의할 때 덜렁덜렁
초딩 수준 어휘력에 '허걱'
'난방' 참 '문안'하고 멋지십니다…선배, 감기 빨리 낮으세요
美서 학창시절 보낸 신입사원
'의무참석' MT 메일 보냈더니 "토요일 학원땜에 못갑니다"
'갸루상' 그녀, 붙인 눈썹이 회의할 때 덜렁덜렁
초딩 수준 어휘력에 '허걱'
'난방' 참 '문안'하고 멋지십니다…선배, 감기 빨리 낮으세요
美서 학창시절 보낸 신입사원
'의무참석' MT 메일 보냈더니 "토요일 학원땜에 못갑니다"
IT업체에 다니는 구 대리는 말 실수(?)로 종종 직원들을 어리둥절하게 한다. 팀 선배인 이 과장이 미국 뉴저지로 1년간 연수를 떠나기로 결정되자, 싹싹한 성격의 구 대리는 이 과장 자리로 달려가 축하의 말을 건넸다. “과장님~ 너무 축하드려요. 뉴저지 연수 가신다면서요? 캐나다가 살기 참 좋다는데 부러워요!” 이 과장이 눈을 껌벅껌벅하며 “구 대리, 뉴저지는 캐나다가 아닌데…”라고 하자, 구 대리는 “잠시 착각했다”며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이 압권이다. “알죠, 과장님! 뉴.질.랜.드!~~ 풍차의 나라!” 해맑게 ‘맞죠 맞죠’를 외치는 구 대리. 이 과장의 머릿속은 온통 ‘?????’ 상태다.
‘개그콘서트’의 인기 코너 ‘멘붕 스쿨’을 연상시키는 장면이다. 멘붕 스쿨의 캐릭터들이 담임 선생님(송준근)의 멘탈을 붕괴시키듯, 직장에서도 우리를 ‘급당황’케 하는 인물들이 꼭 있게 마련이다. 우리 김 과장, 이 대리들의 직장을 ‘멘붕 오피스’로 만드는 ‘강력한 개성의 소유자’들을 만나 본다.
◆비~트박스 하겠다고!
출판업체에 일하는 김대리는 학창시절 힙합전사(?)였다. 힙합 음악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바닥을 질질 끄는 힙합 바지에 커다란 박스티를 즐겨 입었고, 서른 살이 넘은 지금에도 이 패션을 고수 하고 있다. 물론 회사에 출근할때는 어쩔 수 없이 정장 차림이긴 하다.
문제는 김대리가 애착을 갖고 있는 ‘비트박스’. 이미 버릇이 되어버렸는지 시도 때도 없이 자리에 앉아서 “북치기박치기 푸부푸풉풉스으~"거리기 때문. 처음엔 귀에 거슬리는 정도였으나 이제는 그 소리 때문에 직원들이 일이 안될 정도다. 김대리 나름대로는 입으로 살살 박자를 맞추는데도 파열음이 나니 소리가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 주변에서 은근히 눈치를 줘보기도 했지만 그의 귀엔 몇 년 째 들리지 않는 듯 하다. ‘북치기박치기 풉풉스~비~트박스 하겠다고~! 이건 내 본능이라고~!’
건설회사 신입사원 정씨는 붙임성이 좋고 성실하지만 ‘초딩’ 수준의 어휘력이 문제다. 그의 메신저 문장을 보면 “차장님, 오늘 입으신 ‘난방’ 참 ‘문안’하고 멋지십니다.” “선배, 감기 빨리 ‘낮으세요’”라는 식이다. 한번은 팀원들이 찜질방 MT를 가서 맥반석 계란을 먹고 있었는데, 모양이 반쯤 찌그러지고 색이 이상한 계란이 들어 있었다. 정씨는 ‘이런 걸 드시게 할 순 없다’며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매점을 향해 쿵쿵 걸어갔다. 그리고 꺼낸 말. “사장님. 여기 이런 거 돈받고 팔아도 됩니까? 계란들이 부화가 덜 됐잖아요, 부화가!” 팀원들은 그를 애써 모른 척해야 했다.
◆“일본에서는요…”
외국 생활을 오래 한 일부 김 과장 이 대리들도 가끔 알 수 없는 행동으로 ‘멘붕’을 유발한다. 무역회사에서 근무하는 홍 과장은 일본에서 대학원까지 나온 신 대리가 늘 거슬린다. 특히 무슨 말이든 ‘일본에서는~’으로 시작하는 그의 말투가 싫다. “점심 시간에 자리를 비울 때는 컴퓨터 전원을 꺼야 합니다” “손에 비누칠을 할 때도 물을 계속 틀어 놓으면 어떡합니까”라면서 특유의 ‘일본에서는요~’로 이어질 때는 속이 울렁거린다. 그래도 후배라고, 지난주 저녁 퇴근길 탕수육이 맛있는 중국집에 데려 갔는데…. 신 대리는 한 입도 안 먹는 것 아닌가. “이렇게 맛있는데 왜 안 먹냐”고 재차 묻는 홍 과장에게 그는 짜증 섞인 말투로 대답했다. “아니, 과장님이 그렇게 쪽쪽 빨던 젓가락으로 휘젓고 있는데 먹을 맛이 나겠어요. 일본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인데….” 홍 과장도 이런 표현이 터져 나올 뻔했다. “오~마이~ 갓!”
요즘 김 대리의 고민은 미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귀국한 신입사원 강씨. 김 대리가 속해 있는 부서는 올해도 부서 MT를 계획 중이었다. 일정은 금요일 오후 일찍 출발해서 하루 자고 토요일 낮에 돌아오는 것. 1년에 한 번 있는 행사인 만큼 웬만한 일이 아니고선 전원이 참석하는 게 관례다. 늘 그렇듯 부서 전체 메일로 일정을 안내한 김 대리에게 강씨의 답장이 왔다. “저는 토요일에 학원을 가야 해서 참석이 어렵습니다.” “MT 못 간다는 사유가 기껏 학원이야.” 김 대리는 강씨의 당당한 ‘아메리칸 스타일’ 앞에 멘탈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당신이 더 납득이 안 가거든요”
대기업 S사에 근무하는 문씨는 최근 들어 파트장인 김 부장이 “납득이 안 가”라는 말을 할 때마다 울화가 치민다. 자칭 유행에 민감하다는 김 부장은 개콘 유행어인 이 말을 즐겨 쓴다. “왜 보고서를 이렇게 쓰지? 납득이 안 가” “빨리빨리 좀 보고서 가져와. 다들 납득이 안 가네”라는 식으로.
문제는 문씨를 비롯한 전 팀원들이 이런 김 부장을 더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무대뽀에 항상 ‘빨리빨리’만을 외치는 그의 모습에 팀원들은 짜증이 치민다.
올해 28살에 훤칠한 미남, 신입사원 박 주임은 사내에서 ‘카사노바’로 통한다. 올해 초 입사해 약 반년밖에 근무하지 않았지만 본사 건물에 있는 또래 여직원들과 대부분 한 번씩은 식사를 했다. 작업 도구는 메신저. 몇 번 봐서 안면이 익은 여직원들에게 꼭 쪽지를 보내 호감을 사는 식이다. 그가 전하는 ‘여자 꼬시는 법’이다. “업무가 지루해질 즈음 오후 시간에는 재밌는 유머 링크와 함께 ‘지겹죠? 잠시 웃으세요’ 이런 멘트를 보내는데, 이게 ‘임팩트’죠! 그리고 사내에서 마주치고 나선 ‘오늘 입은 원피스 진짜 예쁘네요’ 특별해 보이는 칭찬 쪽지 날리는데, 그럼 ‘게임 오버, 디 엔드’!”
하지만 문제는 박 주임의 이런 문어발식 작업이 소문 나는 바람에 요즘엔 여직원들과의 밥줄이 뚝 끊겼다. “어떡하지? 여자 이제 다 끊겼는데, 어떡하지….”
◆갸루상, 사람이 아니므니다
화장품 업체 사원 이씨는 남다른(?) 외모로 늘 주목을 받는다. 긁으면 손톱에 묻어 나올 듯한 두꺼운 화장과 족히 1㎝는 될 것 같은 아이라인, 호피무늬 손톱, 붙인 티 팍팍 나는 인조 속눈썹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상사가 앞에 앉아 있어도, 식사 중에도 아랑곳않고 수시로 화장을 고친다. 모두들 그녀를 흘끔흘끔 쳐다보지만, 거울만 들여다 보이는 그녀는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눈치다. 그녀의 요즘 별명은 ‘갸루상’. 인조 속눈썹이 반쯤 떨어져 괴기스러운 모습으로 회의에 들어왔을 때 팀원들은 이렇게 외치고 싶었다고. ‘이건 정말, 사람이 아니므니다~!’
정소람/고경봉/윤정현/강경민/강영연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