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금융의 하우스푸어 구제안인 ‘세일앤드리스백(매입 후 재임대)’의 구체적인 윤곽이 드러났다. 집을 사들여 원래 집주인에게 임대를 준다는 당초 구상이 신탁을 활용해 임대료를 받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금융권에서는 우리금융이 세금 문제나 가격 산정 갈등을 피해 나름대로 고심한 묘안을 내놓은 것이라는 평가가 많지만, 실효성이 적고 형평성 논란만 불러올 것이라는 비판도 일고 있다. 일부러 연체를 시작한 뒤 원금 상환 유예 혜택을 받는 등 도덕적 해이가 빚어질 수 있어서다. 구체적인 방법론에서도 금융회사별로 각자 할지, 공동 추진할지, 재정을 투입해야 할지 등을 두고 저마다 생각이 다르다.

◆우리금융, “각자 하자”

금융회사들 중 하우스푸어 문제 해결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우리금융이다. 이팔성 회장의 의지가 강하게 작용했다.

우리금융의 세일앤드리스백 방안은 하우스푸어(집주인)가 집의 관리·처분권한을 신탁한 뒤 신탁회사에서 집을 빌려 임대료를 내고 쓰는 형태다. 하우스푸어 입장에선 종전의 대출원리금 상환 부담이 유예되는 대신 임대료를 내야 한다. 고금리 연체이자가 연 5% 수준 임대료로 대체되고, 원금 상환 부담이 2~3년 유예되기 때문에 유리하다.

문제는 대상자가 겨우 수백가구 수준이라는 것이다. 대출금이 지나치게 많은 악성채무자는 아예 대상에서 제외하고, 임대료를 정상적으로 갚을 수 있는 수준의 중산층을 추려내다 보니 대상자가 줄었다.

◆국민은행, “은행권 공동으로”

하우스푸어 대책 마련을 준비해온 다른 금융회사에서는 우리금융이 구체적인 방법까지 내놓으며 ‘마이웨이’ 행보를 보이는 데 대해 내심 불편한 마음을 갖고 있다.

당장 국민은행은 “특정 금융회사가 소규모로 몇 백 가구를 구제하는 것에 그치기보다는 여러 금융회사가 공동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민병덕 국민은행장은 11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서민금융 상담 大행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세일앤드리스백에 대해) 검토는 하고 있지만 (시행은) 보류한 상태”라며 “한 은행에서만 할 것이 아니라 전 금융기관이 새로운 펀드를 구성해 대대적으로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7개 은행이 15%씩 출자해 1조원 규모의 기금이나 특수목적회사를 설립하면 자회사에 15% 한도로 출자를 규제하는 은행법을 피해갈 수 있다”며 “이 기금을 기반으로 정부 보증으로 수조원을 조달하면 세일앤드리스백에 필요한 자금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 “재정 투입 곤란”

금융감독 당국은 ‘하우스푸어 구제책’ 자체에 대해 다소 우려하는 분위기다. 재정을 투입하지 않고 민간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한다면야 긍정적이지만, 형평성 논란이 커지면 결국 보증이나 직접 재정 투입 등 정부 역할론이 등장할 가능성이 높아서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최근 기자들에게 재정 투입을 통한 하우스푸어 구제책을 실행할 수 없는 4가지 이유를 제시하기도 했다. 그는 “주택 가격이 수년간 급등했다가 잠시 하락한 지금이 재정까지 투입할 시기인지, 방식이 지속 가능한지, 집 없는 사람들과의 형평성엔 문제가 없는지 등을 따져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특히 이 같은 방식이 금융의 기본 원칙인 신뢰를 훼손해 도덕적 해이를 불러올 수 있는 만큼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상은/류시훈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