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반까지 부의 상징으로 통했던 일본 소니. 삼성과 LG에 그 자리를 내준 뒤 지난해 사상 최대 손실을 냈다. 비슷한 상황인 파나소닉과 샤프도 대규모 적자에서 벗어나기 위해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일본의 ‘전자 3총사’는 천덕꾸러기가 됐지만 이들을 대신해 일본 경제를 받쳐주는 기업들이 나타났다.

히타치, 미쓰비시, 도시바가 그들이다. 종합전기 회사인 3사는 산업용 기기부터 소비자 가전까지 아우르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더욱 강해졌다. 어째서 ‘종합전기 3인방’은 승승장구하고 ‘전자 3총사’는 악전고투하고 있을까. 삼성경제연구소는 21일 ‘일본 전자기업 실적 변화의 명암’이라는 보고서에서 그 답을 파헤쳤다.

◆‘선택과 집중’ ‘탈(脫) 일본’

일본 전자업계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내리막길을 걸었다. 주요 8대 전자업체의 작년 매출액은 2007년에 비해 22% 줄었다. 적자 규모는 1조1000억엔에 달했다. 파나소닉, 소니, 샤프가 고꾸라진 영향이 컸다.

반면 종합전기 3인방은 탄탄대로를 걸었다. 지난해 도시바는 737억엔의 경상이익을 냈고 미쓰비시도 1121억엔을 벌었다. 히타치는 3472억엔의 경상이익으로 2년 연속 사상 최대 순익을 기록했다.

연구소는 종합전기 회사의 성공 비결을 혁신에서 찾았다. 소니 등이 인력 구조조정에 치우친 반면 종합전기 회사들은 과감한 변신을 시도했다는 얘기다.

우선 집중과 선택의 원리에 입각해 사업구조를 바꿨다. 안 될 법한 소비자 가전 부문은 버렸다. 미쓰비시는 2008년 휴대폰 사업과 일본 시장 1위였던 세탁기 사업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히타치도 2010년 파나소닉에 액정사업을 매각하고 휴대폰 사업도 NEC와 만든 합작사에 이관했다.

대신 정보기술(IT)과 스마트 인프라 부문에 전력투구했다. IT 기술과 플랜트 기술을 결합해 살기 편한 환경을 만드는 ‘사회 이노베이션 사업’이었다.

일본에서 벗어나 시장을 다변화한 것도 종합전기 회사들의 전략이었다.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 신흥 시장을 중심으로 해외로 적극 진출했다. 일본 의존도를 낮추고 엔고 영향을 덜 받은 게 이들의 성공 요인이었다는 게 연구소의 분석이다.

연구소는 무엇보다 ‘적과의 동침’도 서슴지 않는 사업 제휴 방식에 높은 점수를 줬다. ‘주식회사 일본’이라는 간판 아래 히타치와 교세라, 간사이전력, 이토추상사 등이 힘을 합쳐 수주한 460억엔짜리 인도 다헤지 사업을 대표 사례로 꼽았다. 아시아 최대 수처리 시설을 만드는 프로젝트로 일본 정부가 적극 지원한 덕을 봤다.

◆자만심 버리고 위기감 가져야

소니, 파나소닉, 샤프 등 가전 3사도 고강도 구조조정으로 르네상스를 꿈꾸고 있다. 동시에 가전 사업 비율을 줄이고 신사업 투자를 늘리고 있다. 의료사업과 에너지, 사회 인프라 등을 신성장 동력으로 꼽고 있다.

연구소는 “한국도 일본 기업들의 변신에서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고 조언한다. “전자업계 1등이라는 자만심을 버리고 상시 위기의식을 가져 중국의 부상과 일본의 재부상에 대비하라”고 주문했다. “생산성 혁신과 비용절감 등 구조개혁을 일상화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미래 성장사업 발굴의 중요성도 지적했다. 이원희 수석연구원은 “소비자 가전 분야는 경쟁 격화로 한국 업체들의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일본처럼 ‘스마트 시티’ 같은 IT 융합형 인프라 사업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