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비상경영을 선언하고 구조조정의 태풍이 다시 불 조짐이다. 가계부채 문제가 빠른 속도로 실물로 옮겨가고, 불황은 현재 진행형이다. 최근 상황은 단기간에 위기를 극복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 가계부채에 대한 조기 경보에 다들 둔감했다.

가계부채 문제의 핵심은 주택가격 하락과 그에 따른 은행 대출금의 상환 부담이다. 이른바 ‘하우스푸어(원리금 상환에 고통받는 주택담보대출자)’ 문제다. 대출을 받아 집을 산 뒤 집값 하락과 원리금 상환 압박에 시달리는 하우스푸어의 주택은 대출 금융기관과 기관투자가 등이 환매 조건부로 주택을 매입해줄 필요가 있다.

또 비제도권에서까지 돈을 빌려 연체가 심한 다중채무자는 과감하게 법원을 통해 해결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작년 말 국내 가계부채 총액은 912조원으로 10년 전인 2001년 말(342조원)보다 세 배 가까이로 늘었다. 이후에도 증가해 1000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와 하우스푸어는 연말 대선의 주요 쟁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정치권과 대선 후보들은 중산층의 고충을 해결하기 위한 대책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는 집주인이 주택지분의 일부를 공공기관에 팔아서 빚을 줄이는 대신 매각한 지분만큼에 대해 월세(임차료)를 내도록 한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우스푸어' 은행에도 책임…대출만기 여러 개로 쪼개야

소유권은 집주인이 갖되 대출 원리금 상환부담을 줄여주는 게 핵심이다. 은행이 집을 통째로 매입한 뒤 집주인에게 월세로 살도록 하고, 나중에 되살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세일 앤드 리스(매각 후 재임대)’ 방식과는 차이가 있다.

우선 가계부채 문제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가계부채를 세분화해 차별화된 대응책을 모색하는 게 중요하다. 이미 문제가 발생한 가계와 문제 발생 가능성이 있는 고객은 구분돼야 한다. 문제 발생 가능성이 있는 가계도 나눠야 한다. 원금은 못 갚아도 이자는 부담할 수 있는 가계와 이도저도 못하는 가계부채로 나눠 현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차입처별로 내용을 파악하고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복잡한 채무자는 별도 관리해 해결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최근 가계부채와 관련된 제2금융권의 부동산담보대출 실태 파악에 나선 금융감독당국의 방향은 바람직하다.

연말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100조원의 가계대출이 당장 발등의 불이다. 정치권에서는 부채상환 능력이 없는 채무자의 이자를 탕감해줘야 한다는 공약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빚을 탕감해주는 것은 형평성 문제나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불러올 수 있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대신 만기를 여러 개로 잘게 쪼개 채무자의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 예컨대 10년 이상 대출의 만기가 돌아오면 신규 대출로 전환해주되 원금의 10%는 3년 만기, 30%는 7년 만기, 나머지는 10년 만기 등으로 분산하는 것이다. 다만 은행이 대출 만기 연장 때 금리 인상이나 원금 일부 상환을 요구하면 안 된다.

또 만기가 돌아온 채무를 연장할 때는 과거 적용한 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에 예외를 두면 효과적이다.

현재의 가계부채는 초단기 성과평가에 급급한 은행들의 모럴해저드에 1차적인 책임이 있는 만큼 금융회사들이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 핵심은 하우스푸어의 부실 부동산을 금융상품으로 전환해 그들의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다.

금융상품을 만들어 위기에 직면한 가계의 담보대출 관련 주택을 환매조건부로 매입해 주는 것(환매조건부 주택 매입제도)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채무자의 주택을 정부와 은행이 시세의 80% 정도에 사들인 뒤 채무자에게 5년 내에 되살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채무자에게는 그 집의 전세 우선권을 주고, 재매입할 경우 취득세나 양도소득세 면제 등의 혜택을 주는 것도 좋다.

채무자는 주거불안 없이 원금 상환 및 이자 부담으로부터 해방된다. 주택매입 재원은 물론 대출금이 있는 금융회사와 기관투자가 및 개인투자자를 참여시켜 조달할 수도 있다.

더 나아가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 주택 매입가의 20% 정도를 신용보증기금 등에서 보증을 서면 사실상 원금보장형 상품이 돼 투자자들에게도 관심을 끌 것이다. 하우스푸어는 팔리지 않던 집을 매각해 현금을 확보할 수 있고 이를 사들이는 투자자들은 시세보다 싸게 매입한 부동산을 통해 임대수익을 올릴 수 있어 상호 윈윈이 가능하다.

당정이 이미 은행 중심의 배드뱅크 설립 논의에 들어간 상황에서 하우스푸어의 집을 사들일 재원을 늘리는 데도 국민연금과 리츠(부동산투자회사) 등이 참여하면 더욱 좋다. 최근 부동산 시장 침체로 리츠들이 돈을 굴릴 곳이 없는 게 현실이다. 은행권만 하우스푸어 집을 사들이면 출자 규모가 제한적일 가능성이 크다. 하우스푸어를 비롯한 가계부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참여기관을 은행권만으로 제한하는 건 한계가 있다. 은행 등 금융권이 직접 수익형 부동산을 운용하지 않는 한 법에 저촉되지도 않는다.

채무자 5년내 되살수 있는 환매조건부 매입제 도입

이미 연체가 시작돼 금융회사가 해결하기 어려운 채무자는 신속하게 법원의 회생이나 파산절차를 밟도록 나서야 한다. 우리나라에는 개인회생과 소비자파산 제도 같은 투명한 채무조정제도가 있다. 개인회생은 미래의 수입이 예상되는 채무자가 수입 중 생계비를 뺀 금액으로 일정 규모의 빚은 5년간 나눠 갚고 나머지 채무는 면책을 받는 제도다.

소비자 파산은 도저히 빚을 갚을 능력이 없는 채무자에게 법원이 파산 선고를 내려 채무를 면제해 주고, 경제적 재기의 기회를 주는 것이다. 채무가 복잡하고 해결 가능성이 낮은 다중채무자는 회생이나 파산제도를 적극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결정은 빠를수록 좋다. 정부가 대책을 쏟아내고는 있지만 아직 시장은 움직이지 않고 있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놓아야 한다. 모두 다 어려워지기 전에 실행에 옮겨야 한다.

이정조 < 리스크컨설팅코리아 대표 >

△연세대 경영학과 △국민연금공단 대체투자심의위원 △공무원연금관리공단 리스크관리심의위원 △중소기업청 제도개선협의회 위원 △리스크컨설팅코리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