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은 출자총액제한제도, 순환출자금지 등 경제적 효과보다는 부작용이 우려되는 제도 도입에 신중해야 한다. 다만 재벌도 과감한 자기혁신이 필요하다.”

한국선진화포럼(이사장 남덕우)이 25일 주최한 ‘경제민주화’에 관한 전직 경제장관 토론회에서 한국 경제의 저성장과 양극화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경제민주화에 대한 정책 제안들이 쏟아졌다. 이날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토론회에 참석한 전직 장관 11명은 “정치권이 경제민주화란 이름 하에 ‘대기업 때리기’에만 열중하는 것 같다”고 우려감을 표시했다.

◆“대기업, 골목상권 침탈 말아야”

최종찬 전 건설교통부 장관은 주제발표에서 “경제민주화는 성공한 사람을 끌어내리고 가진 자의 부를 빼앗아 나눠주는 것이 아니다”며 “새로운 부를 창출하고 모든 사람에게 기회가 열려 있는 사회, 더불어 잘사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치인들이 대선 전략 차원에서 경제민주화를 주창하고 있는 데 일침을 가한 것이다.

최 전 장관은 재벌규제와 일자리 창출, 양극화 해소, 사회보장제도 확충 등을 경제민주화의 주요 화두로 제시했다. 특히 재벌규제와 관련해서는 “재벌이 비대해진 것은 소비자 선택과 산업구조 변화의 결과”라며 “정치권과 재벌, 정부가 각자 위치에서 경제활력을 북돋을 수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선 정치권에 대해서는 출자총액제한 등 제도 도입에 신중한 접근을 요구했다. 최 전 장관은 “기업의 출자는 시장원리에 따라 판단하고 결정할 문제이지 법규로 규정한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한갑수 전 농수산부 장관은 “어려운 경제현실을 감안해 순환출자와 가공의결권 제한 등은 그 범위와 시기를 조절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재벌에 대해서도 과거의 잘못된 행태에서 벗어나 현대적 기업 집단으로 거듭날 수 있는 자정노력을 촉구했다. 최 전 장관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의 골목 상권까지 침투하는 탐욕스런 행태를 스스로 자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도 “파리 시내에는 대형 마트가 들어올 수 없다”며 “정부가 보호해 줄 것은 확실히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은 “우리 사회 경쟁질서 자체가 불공정해 아무리 열심히 해도 희망이 없는 것이 문제”라며 “재벌이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 경쟁질서를 왜곡하는 것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편적 복지는 포퓰리즘”

전직 장관들은 최근 실업문제가 산업구조의 변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기업하기 좋은 여건을 조성하는 데 정부가 역점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고용률을 경제운영의 최우선 지표로 설정하고 고용유발 효과가 큰 서비스업에 대한 진입장벽을 과감히 철폐할 것을 제안했다. 또 △IT산업의 인력 수급 장기계획 수립과 △문화·콘텐츠 등 창조산업 육성 △교원 경찰 환경 복지 요원 증원 △산업구조 변화에 맞는 고등교육 제도 개편 등을 제시했다.

진념 전 경제부총리는 전면적 반값등록금 도입에 대해 “노동시장 개선이나 부의 재분배 차원에서 맞지 않다”며 “국가적으로 필요한 특수학교 지망생이나 학비조달이 어려운 학생에게 선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양극화 해소에 대해서는 재분배 효과를 강화하도록 조세구조를 재검토하고 사회보장제도의 내실화를 강조했다. 이승윤 전 경제부총리는 “소득과 부의 양극화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닌 세계적인 현상”이라며 “재벌 해체나 개혁으로 양극화 문제가 해소된다고 보는 건 안일한 생각”이라고 말했다. 또 사회보장제도 확대 움직임과 관련, 최 전 장관은 “정치권에서 국가적 우선순위의 고려 없이 인기 위주의 ‘보편적 복지’를 주장하는 것은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서정환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