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과 날줄] '대인배'가 틀린 말인 줄도 몰라서야
대인이면 대인이지 대인배란 말은 없다. 틀린 말이다. 소인배(小人輩)는 있다. 소인배의 배(輩)는 조롱이나 비난의 뜻을 지닌 ‘무리’라는 뜻으로, 폭력배 치기배와 같이 쓰인다. 따라서 공경의 뜻과 함께 쓸 수 없다. 대인배란 마치 ‘선생놈’처럼 격에 맞지 않는 우스꽝스러운 단어가 돼버린다. 그런데도 요즘엔 너도나도 대인배라고 쓴다. 이런 잘못된 단어를 쓰는 기사 한 줄이 겨레말에 엄청난 해악을 끼친다.

‘자리하다’는 말도 본디 우리말에는 없었다. 그런데 방송에서 아나운서들이 자꾸 틀린 말을 반복해 쓰더니 결국 어법에 맞지 않은 그릇된 단어를 만들어놓았다. 그 바람에 지금은 ‘자리에 앉아주십시오’가 ‘자리해주십시오’로 널리 쓰인다. 비슷한 사례로 ‘위치하다’와 ‘기초하다’ 따위가 있다. 명사에 ‘하다’를 붙여 동사나 형용사로 만드는 이런 표현은 그야말로 일본말법이다. 요즘 백화점이나 마트에서는 서로 약속이나 한 듯 ‘고객님, 즐거운 쇼핑 되십시오’라 하는데 이 역시 틀린 말이다. 쇼핑은 ‘되는’ 게 아니라 ‘하는’ 것이다. ‘즐겁게 쇼핑 하십시오’가 맞다. ‘고객님’도 일본말이다. ‘손님’으로 바꿔 써야 옳다.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왔는가. 지난 9일은 566돌을 맞는 한글날이었다. 하지만 해방 후 지난 60~70년에 걸쳐 민간에 남은 일제 잔재를 걷어내는 일에 국민 개개인이 소홀히 했고, 역대 지도자와 행정부, 공직자 어느 누구도 그런 일에 무심했던 결과가 오늘날 심각한 모국어 중병사태를 낳았다. 방송이 틀렸고, 신문활자가 틀렸고, 인터넷 기사가 틀렸고, 정부 공문서가 틀렸고, 문학작품이 틀렸고, 교과서와 사전이 틀렸다. 이런 나라가 세상에 또 있을까. 심지어 국가의 혼이라고 할 수 있는 헌법 전문에까지 버젓이 일본식 표현이 등장한다고 지적했지만 고쳤다는 말은 아직 듣지 못했다. 더 무서운 것은 그럼에도 무엇이 얼마나 잘못됐는지 아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고, 설령 알아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래놓고 한류니 우리 문화 세계화니 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오장육부가 뒤집힌다.

[씨줄과 날줄] '대인배'가 틀린 말인 줄도 몰라서야
나는 여태껏 우리말을 올바르게 쓰는 대한민국 대통령을 본 적이 없다. 다음 대통령을 하겠다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대통합이 저의 마지막 정치적 소명이라고 생각하고’(박근혜)에서 ‘소명’은 ‘사명’이라고 써야 옳다. 소명, 소명의식은 일본식 표현이다. 우리 옛말에도 소명이 있지만 그렇게 쓰면 뜻이 달라진다. ‘성장 내지는 일자리’(안철수)의 ‘내지’도 일본말이다. 안철수 씨는 유난히 이 표현을 즐겨 쓰는데 ‘혹은’이나 ‘또는’으로 고쳐야 한다. ‘서민층의 삶의 기반붕괴’(문재인)나 ‘공권력의 남용의 최악의 형태’(안철수)처럼 소유격을 반복해서 쓰는 것 역시 일본말법이다. 이런 그릇된 단어와 문장 사용은 굳이 찾으려고 해서 찾은 게 아니다. 인터뷰 기사나 화면이 나가는 그 짧은 동안에도 신기할 정도로 말들을 잘못 쓴다. 이는 정치인과 사회지도층이 사용하는 언어, 아니 국민 언어 전체가 오염됐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다.

보도를 보면 몇몇 문필가들이 대선 캠프에 합류한다고 한다. 옛일을 살피건대 문인이 유명세를 밑천으로 다른 분야를 기웃거려 일장춘몽 이상을 얻을 게 있을까마는, 이왕 현실정치에 참여한다면 우리말, 우리글을 획기적으로 되살릴 방안만은 이번에 꼭 만들었으면 한다. 지금처럼 말과 글이 썩어 회생이 불가능할 지경에 빠졌는데 문인으로서 더 중대하고 시급한 일이 무어란 말인가. 우선 일본말, 일본식 표현을 전혀 걸러내지 못하는 국어사전부터 제대로 만드는 게 시급하다. 방송과 교육에도 거국적인 각성이 있어야 한다. 이 고언(苦言)이 가볍게 들린다면 모국어가 앓고 있는 중병에 별로 아는 바가 없는 것이고, 알고도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는다면 스스로 본분과 직무를 망각하고 유기했다는 비난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참고로 덧붙이면 법제처에서 지난 수년간 꾸준히 추진해 온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 사업이 여러 면에서 훌륭한 본보기가 되리라고 본다.

김정산 < 소설가 jsan1019@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