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팡~’소리에 심장이 ‘쫄깃’해진다. 레벨 보너스까지 더하면 최고 기록을 넘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침이 꼴딱 넘어간다. 28만2796점. ‘와~아~’ 탄성이 나왔다. 순위가 38위에서 12위로 수직상승했다. 거기에 13위로 밀려난 사람이 ‘넌 너무 밑에 있어서 하트주기가 힘들어’하던 과장님이다. 자랑하기를 클릭해 과장님에게 자랑 메시지를 보내고 나니 이제 편히 잠들 수 있을 것 같다. 벌써 새벽 2시다.

대체 ‘애니팡’이 뭐라고 점수가 안 나오면 속상하고 하트를 안 보내주는 사람에게 서운할까. 세상 사람들을 하트 주는 사람과 안 주는 사람으로 나눠버린 국민게임 ‘애니팡’에 빠진 김 과장 이 대리들의 에피소드를 모아봤다.

◆회의시간 중에 순위가…

홍보팀 김 대리는 최근 회의 후 이 부장으로부터 한 소리 들어야 했다. 지겨운 회의 시간, 이 부장 자리와 멀리 떨어져 잘 보이지 않을 거라 생각해 휴대폰을 책상 아래 숨겨 애니팡을 하고 있었는데 운 좋게 자신의 최고 기록을 달성했다. 하지만 문제는 회의를 진행하던 이 부장의 순위를 넘겨 버린 것. 회의 후 애니팡을 켰던 이 부장은 그 사이 김 대리의 순위가 자신 위로 올라온 것을 발견하고는 가자미눈을 뜨고 “김 대리는 회의 시간에 애니팡이나 하고 앉아 있고, 되겠어”라며 잔소리를 했다. “회의 시간에 애니팡했다고 화를 내시는 건지, 본인 점수를 넘어서 화를 내시는 건지 솔직히 잘 모르겠더라고요.”

새 부서로 발령난 지 1주일 정도밖에 안 된 최 대리는 전 부서원들이 경쟁 입찰 프레젠테이션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정작 본인은 별로 할일이 없었다. 심심하던 차에 최 대리는 슬며시 스마트폰을 꺼내 ‘벨소리 모드’를 ‘무음 모드’로 바꿨다. 조용히 동료들 몰래 애니팡을 하기 시작했는데…. 앱을 누른 순간 종이 넘기는 소리만 들리던 사무실의 정적을 깨는 소리. ‘딴~따 따라 따라딴~레디 고’. 황급히 게임을 종료했지만 국민 게임 애니팡의 배경 음악을 모르는 직원은 없었다. 다른 게임과 달리 애니팡은 스마트폰이 진동 또는 무음 모드로 설정돼 있어도 자체 사운드를 따로 조절해야 소리를 끌 수 있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8명 팀원 전원이 업무시간에 몰래 애니팡을 하는 것을 알게 된 구 팀장은 팀의 막내에게 특별 지시를 내렸다. “우리 팀원 중 애니팡 안하는 사람 없지? 그럼 팀원들 애니팡 주간 순위 1위부터 8위까지 모두 적어내.” 구 팀장은 그리곤 앞으로 순위를 매겨서 1등이 제일 일 안하는 사람, 8등이 그 중 제일 열심히 일하는 사람으로 간주하겠다고 선포했다. 팀원들은 처음엔 웃어넘겼지만, 최 팀장의 확고한 정책에 슬슬 애니팡과 멀어지기 시작했다.

◆게임 대타에 하트 조공까지

대기업에 다니는 문씨는 최고점수가 50만점이 넘는 애니팡 고수다. 그런 문씨에게 요즘 가장 중요한 일은 부장님들의 애니팡 점수를 올려 드리는 것. 아무리 해도 10만점을 넘기기 힘든 부장들이 문씨에게 대신 게임을 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시작해서 점심시간, 근무시간 가리지 않고 해드려야 합니다. 1주일에 한 번씩은 해드려야 하고 다른 부장님들보다 점수가 낮게 나오면 다시 하라고 하시는 통에 하루에 애니팡을 얼마나 하는지 모르겠어요. 이제 질려서 정작 저는 애니팡 안 합니다.”

조 대리 역시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조 대리의 중요한 아침 일과 중 하나는 상사들에게 하트를 보내는 것이다. “너는 왜 하트를 안 보내냐”고 직접적으로 묻는 상사들 때문에 하루도 빼먹을 수 없다. “보낸 하트 수를 고과에 반영하겠다는 말이 농담처럼 안 들리더라고요. 아침에 한 번, 점심시간에 한 번, 퇴근길에 한 번, 최소 하루 세 번은 꼬박 챙기고 있습니다.”

회사에 갓 입사한 신입사원 강씨는 전무님이 보내신 하트에 당황했다. 확인은 했으니, 뭐라고 대꾸는 해야 하는 노릇. “하트 감사합니다. 좋은 저녁 보내세요.” 누가 봐도 무난한 답이라고 생각했지만 불호령이 떨어졌다. “하트를 줬으면 하트를 줘야지, 고맙다는 말은 필요없다.” 그 뒤로는 강씨가 전무에게 미리미리 하트를 챙겨 보내고 있다.

◆모든 게 애니팡으로 보여요

애니팡 마니아인 증권사 직원 이 차장은 요즘 강박증에 시달리고 있다. 회사 로비 스크린에 늘 다우지수 코스닥 코스피 등 지수 등락을 가리키는 화살표가 떠있는데, 빨간색 상승 화살표들 사이에 파란색 하락 화살표가 끼어 있으면 손으로 내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는 것. 경제신문의 시장 지표 그래프나 뉴스를 볼 때도 자신도 모르게 손가락을 가져가게 된다고….

강 대리는 휴대폰에서 태플릿, 노트북에 이르기까지 모든 IT제품을 애플것만 사용하는 ‘애플빠’다. 그런 그가 얼마 전 휴대폰을 삼성 갤럭시S3로 바꿨다. 이유는 단 하나, 애니팡 때문이다. 애니팡은 스피드가 생명이기 때문에 반드시 LTE폰을 써야 한다는 친구들의 주장에 그의 애플 사랑이 무너진 것. LTE가 지원되는 아이폰5의 국내 출시를 기다리는 것보다는 애니팡 점수 올리는 게 강 대리에게 더 시급한 일이다.

◆♥ 왜 보냈냐고? 꿈 깨!

애니팡 얘기를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에 얽힌 사연이다. 대기업 A사에 다니는 이씨는 얼마 전 사내커플이었다가 헤어진 동료 여직원으로부터 애니팡 하트를 선물받았다. 헤어진 지 얼마 안 돼 아직도 그녀를 잊지 못하던 이씨는 가슴이 쿵쾅거리고 온갖 생각이 떠올랐다. ‘다시 만나고 싶다는 뜻일까’ ‘차마 말을 못해 일부러 하트를 보낸 것 아닐까’. 결국 용기를 낸 이씨는 그녀에게 휴대폰 문자를 보냈다. “네가 보낸 하트는 무슨 뜻이야?” 그녀에게서 온 답장을 확인한 이씨는 더 이상의 미련을 접었다. “별 거 아니거든요? 그냥 꿈깨고 정신 차려. 이 XX야!”

중견기업 S사에 다니는 김씨도 비슷한 경우다. 얼마 전 소개팅을 한 여성에게 꽂혔지만 차마 용기를 내지 못해 주저하던 김씨. 회사 동료에게 애니팡 하트를 보내라는 조언을 듣고 그대로 실행에 옮겼다. 하루에도 몇 번씩 소개팅녀에게 하트를 보내던 김씨는 며칠 후 소개팅녀의 문자를 받고 좌절했다. “저…죄송한데 애니팡 하트는 그만 보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분 만나세요. 죄송합니다.” 이후 김씨는 애니팡에서 아예 손을 뗐다.

점수높이려고 어떤 노력?…"연락 끊은 친구에게도 초대메시지 보내" 36%

직장인들이 애니팡을 하면서 가장 황당했을 때는 ‘친하지 않은 사람들이 하트를 보냈을 때’인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조사업체 엠브레인이지서베이가 직장인 539명을 대상으로 지난 11~15일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44.5%가 이처럼 답했다. 이어 △점수가 안 나와서 속상할 때(22.7%) △나이 많은 상사가 나보다 점수가 높을 때(9.0%) △다른 사람이 게임을 대신 해달라고 할 때(6.1%) △내가 꿈 속에서도 애니팡을 하고 있을 때(4.9%) △애니팡 메뉴얼이 나왔을 때(3.8%) 등의 순이었다.

애니팡 점수를 높이기 위한 노력을 묻는 질문에는 ‘연락 끊어진 옛 친구들에게 초대 메시지 보내기’라고 답한 사람이 36.0%로 가장 높았다. 이어 △잘 모르는 사람에게 게임 노하우 물어보기(26.7%) △점수 높은 사람에게 대신 게임 해달라고 부탁(25.6%) △태블릿 PC놓고 여러명이 함께 게임(20.3%) △돈 주고 하트 구입(3.5%) 등의 순이었다.

애니팡 없이 하루도 살지 못하는 직장인들도 많았다. 애니팡을 한다고 답한 63.8%의 직장인 중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한다’는 응답자가 47.4%로 가장 많았고 ‘하루에도 열두 번씩 생각 날 때마다 한다’(27.6%)는 대답이 뒤를 이었다.

회사에서 애니팡 때문에 힘든 점을 묻는 질문에는 ‘애니팡을 하지 않으면 대화에 끼기 어렵다’는 응답이 23.9%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애니팡의 긍정적인 면은 ‘하트를 주면서 서먹하던 동료들과 친해진다’는 응답이 49.0%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강영연/고경봉/윤정현/김일규/강경민/정소람 기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