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할머니는 늘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죠. ‘간장은 빨간 뚜껑이 제일 맛있어’라고요. ‘간장은 뭐니뭐니해도 샘표’라는 말씀이셨습니다. 우리 할머니처럼 누구나 아는 국민브랜드로 만드는 것. 그것이 제가 샘표식품에서 이루고 싶은 꿈입니다”

지난해 말 경기도 이천공장의 샘표식품 종무식 현장. 합격통지를 받은 예비 신입사원 송아영 씨(숙명여대 법학과 졸·24)는 500여명의 임직원 앞에서 조용히 샘표식품에서의 꿈을 이야기했다.

지난 금요일 오후 기자는 서울 충무로에 있는 샘표식품 본사를 찾았다. 사진 촬영을 마치고 내려온 송씨에게 샘표식품 자랑을 부탁했더니 눈을 반짝이며 술술 풀어놓았다. 입사 1년도 채 되지 않은 갓 신입사원이지만 진정한 ‘샘표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인천에서 영업을 담당하다 2개월 전 한식양념 마케팅 담당으로 배치받고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의 취업 스토리를 들어보았다.

◆요리에 담긴 어머니 사랑

송씨가 요리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어머니 덕분이었다. “맞벌이로 바쁘셨던 어머니는 늘 우리 남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계셨어요. 그래서 쉬는 날이면 늘 맛있는 요리를 한 상 가득 만들어주셨죠. 요리로 당신의 사랑을 표현하신거죠.” 사랑과 정성을 가득 담은 요리 한 그릇이 만들어내는 힘은 컸다. “어머니가 하신 것처럼 저도 자연스레 요리로 마음을 표현하게 됐어요. 중학교 1학년 때 오빠를 챙기고 싶은 마음을 담아 안동찜닭을 만들었어요. 생애 첫 요리라고 봐준 건지 ‘맛있다’는 평가를 받고 으쓱했죠.”

요리가 취미가 된 송씨에게도 위기의 순간이 왔다. 바로 다이어트를 결심한 것이다. 하지만 아이로니컬하게도 3개월의 다이어트는 그에게 ‘미각의 재발견’이라는 행운을 안겼다. “나물 반찬 위주로 끼니마다 식단을 짰어요. 브로콜리도 다이어트하면서 처음 접해봤을 정도로 채소에 무지했었죠.” 한식의 맛에 눈을 뜨게 되면서 그는 무려 17㎏을 감량했다. “라면과 과자를 끊

니 그동안 제가 얼마나 미맹(味盲)이었는지 알 수 있었어요. 화학조미료인 MSG 때문에 둔해졌던 미각이 다시 돌아온 거죠. 다이어트를 통해 건강한 음식이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습니다.”

음식을 통해 건강한 신체와 미각을 갖게 된 그는 식품회사에 입사,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다고 한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찾듯이, 당신이 사랑하는 일을 찾아라’는 말이 있습니다. ‘음식’과 관련된 일이라면 제가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긍정적이고 성실한 마음으로 일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서더라고요.”

입사 전 가졌던 믿음은 신입사원이 된 후 더 확고해졌다. “우리 회사 회장님이 자주 하시는 말씀 중 하나가 ‘우리 가족이 먹지 않는 것은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에요. 신사옥 대신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오송에 우리발효연구소를 설립한 것도 이런 샘표식품의 생각을 나타내주는 것이죠. 이 정도면 회사와 저, 찰떡궁합 아닌가요?”

◆마케터를 꿈꾼 법대생

현재 마케팅1팀에서 돼지고기 한식양념 신제품을 맡고 있는 그는 마케팅과는 거리가 먼 법학 전공자다. “고등학생 시절 ‘법과 사회’라는 과목에서 높은 성적을 받았어요. 당시에는 그게 법의 전부인 줄만 알고 법학과에 진학했는데 막상 대학교에 와보니 제가 꿈꾸던 것과는 거리가 멀더라고요. 제 꿈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한 화장품 회사의 대학생 마케터로 선발된 송씨는 비로소 ‘마케터의 꿈’을 갖게 됐다. “두 달 안에 남자화장품을 개발하라는 미션을 받았어요. 신제품 개발을 위해서는 고객 분석이 선결과제라고 판단했지만 많은 시간이 걸리는 부담스러운 작업이었죠.” 모두가 빠르고 쉬운 길로 갈 때 오히려 ‘정공법’을 택하기로 했다. “200명에게 직접 설문을 받아 철저히 분석했어요. 머리로 한 기획보다 실제 고객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죠. 비록 상은 받지 못했지만 ‘기획안의 논리가 탄탄하다’는 실무진의 평가 덕분에 마케터를 꿈꿀 수 있었어요.”

샘표식품에 합격한 비결을 묻자 ‘러브레터’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쓸 때 그 사람에 대한 사소한 것 하나까지 모두 담아 정성껏 쓰잖아요. 자기소개서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샘표를 사랑하는 진솔한 마음을 담아 편지를 썼죠.”

면접에서는 임직원들을 사로잡는 재치도 보여줬다. “연극배우를 섭외해 회사에서 일어날 법한 일을 가정한 ‘상황면접’을 치렀어요(올해는 상황면접은 안 본단다). ‘같은 직급 다른 부서의 직원이 계속 일을 떠넘기려는 상황’이었죠.”

제 잇속만 차리기보다는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해야 했다. “‘도와줄 수는 있지만 한계를 분명히 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화를 낼 수도 있지만 협동이 우선이니까요. 부하직원들의 불만은 어떻게 대처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맛있는 간식을 보내주면 되죠. 그럼 직원들이 좀 풀리지 않겠느냐’라고 답했어요. 임직원 분들이 껄껄 웃으시며 크게 공감하셨습니다.”

이렇게 긍정적인 기질은 의류매장 매니저인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았다. “어머니는 어릴 때부터 제게 ‘스스로 일을 찾아서 하는 사람이 되라’ ‘알바를 하더라도 할 일이 없을 땐 화장실 청소라도 하라’ ‘프로의식을 가져라’고 말씀하셨어요. 저도 어머니처럼 되고 싶었죠.”

마케팅업무를 한 지 이제 두 달밖에 안 됐지만 송씨에게서 가슴에 남는 마케팅 철학을 들을 수 있었다. “흔히 마케팅이란 뭔가 거창하고 창의적인 그 무엇이라고 생각하잖아요. 하지만 저는 마케팅이란 꼼꼼함이요 성실함이라 생각합니다. 획기적인 제품도 결국은 꼼꼼하게 기록하고 분석하는 과정에서 나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가수는 음반을 남기고 감독은 한 편의 영화를 남긴다 했던가, 돌아오는 길 마케터 송아영 씨가 기획할 신제품은 무엇일까 벌써부터 궁금했다.

공태윤 기자·노윤경 한경잡앤스토리 기자 true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