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출자는 도요타와 GE, LVMH, 타타 등 세계 기업에 다 있다. 왜 우리 기업만 금지하려는가.”

“워런 버핏(벅셔 해서웨이 회장)과 세르게이 브린(구글 창업자 겸 사장)은 차등의결권을 갖고 얼마 안되는 지분으로 회사를 지배한다. 한국이라면 지탄받을 일이다.”

경제학자들이 대선 후보들의 대기업 계열사 간 순환출자 금지 공약에 대해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했다. 정치권의 자의적 잣대로 대기업의 지배구조를 뜯어고치려다 우리 기업들의 손발만 묶고 경제에 악영향을 줄 것이란 지적이다.

김정호 연세대 교수는 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바른사회시민회의 주최로 열린 ‘순환출자의 세계적 현황과 시사점’ 토론회에서 “순환출자나 순환출자로 만들어지는 가공자본은 세계 어느 기업에나 존재한다”며 “도요타 GE뿐만 아니라 심지어 착한 기업의 상징으로 꼽히는 안철수연구소도 가공자본을 출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삼성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이 순환출자 구조를 갖춘 것은 정부가 1960년대부터 강제소유분산 정책, 부채비율 200% 규제 등을 취하면서 나타난 역사적 산물이라고 설명했다. 또 순환출자를 규제했다면 삼성이 반도체에 진출해 모험적 투자를 하거나, 현대차가 부실기업이었던 기아차를 인수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순환출자를 해소하라는 것은 오너 중 누군가가 지분을 모두 살 수 있다는 걸 전제로 하는데 이는 비현실적”이라며 “정치권이 순환출자의 고리를 끊게 되면 알짜 기업들을 외국 자본의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노출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이석 시장경제제도연구소 부소장은 “대기업 오너가 적은 지분으로 지배권을 행사하는 것은 그동안의 정부 정책에 의한 것”이라며 “기존 계열사 중 상당수가 적대적 M&A에 노출되고 대기업 집단의 경쟁력도 약화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쌍용차나 웅진그룹처럼 순환출자로 인한 대규모 투자가 가져오는 실패도 있지만 여러 부작용을 가져올 순환출자 금지보다는 시장이 진화하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성봉 숭실대 교수(경제학)는 “소비자나 주주 채권자 등 기업의 이해당사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시장경쟁력이지 순환출자가 아니다”며 “순환출자 해소로 경영권이 흔들리면 진짜 어려워지는 것은 우리 국민과 정부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순환출자 그 자체보다는 정치인들의 국민 선동이 더 문제”라고 비판했다.

최준선 성균관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순환출자를 막겠다는 논리는 가공자본을 형성하기 때문인데, 가공자본은 회사가 다른 회사에 투자하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라며 “가공자본을 금지하는 것은 투자하지 말라는 얘기와 같다”고 말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