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투자업계에서 자동차주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을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기업 분석을 하는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현대차를 비롯한 자동차주가 지난달 초부터 급락해 저평가 영역에 진입했다고 진단한다. 주가가 기업 가치에 비해 싸다는 것이다. 그러나 직접 주식 투자를 하는 자산운용업계에서는 현 주가도 싸다고 보기 어렵다는 반론이 나온다. 자동차산업의 성장세가 둔해져 자동차주를 보는 눈높이를 낮춰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대차, 청산가치에 근접”

자동차업종지수는 12일 1990.39로 마감했다. 이달 들어 6.70%, 지난 9월 말보다는 14.57% 급락한 수준이다. 업종 대표주 현대차는 2500원(1.17%) 오른 21만6500원에 마감해 미국시장 연비 오류가 드러나기 전 가격을 회복했지만 연중 고점(5월2일 27만2500원)과 비교하면 20% 이상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기아차는 100원(0.18%) 내린 5만6500원에 거래를 마쳐 3거래일째 연중 최저가를 경신했다.

최근 급락으로 자동차주 밸류에이션은 낮아졌다. KTB투자증권은 현대차의 내년 예상 순이익 기준 주가수익비율(PER)이 5.7배라고 분석했다.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 파산 직후였던 2008년 10월 5.5배까지 떨어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기아차 역시 PER이 6.3배로 내려갔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연구위원은 “현대차는 주가순자산비율(PBR)도 청산가치인 1배에 근접하게 하락했다”며 “경기 둔화와 환율 하락 등 부정적인 요인을 감안해도 현 주가는 싸다”고 분석했다.

◆“성장 둔해진 만큼 PER 낮아져야”

자동차주를 싸다고 볼 수 없다는 주장은 자동차산업의 성장이 둔화됐다는 데서 출발한다. 현대차는 내부적으로 내년 전 세계 자동차 판매 대수 증가율이 3.6%로 올해(5.1%)보다 낮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부사장은 “자동차주의 성격이 ‘성장주’에서 ‘가치주’로 변했다”며 “성장이 둔해지면 PER 배수도 낮아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자산운용사를 중심으로 한 기관투자가들이 자동차주를 팔고 있는 것도 이런 인식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다. 자산운용사는 지난 10월 이후 현대차를 4161억원, 기아차 3693억원, 현대모비스를 1486억원 순매도했다. 종목별 순매도 규모에서 이 세 종목이 1~3위다.

분석 방법에 따라서는 국내 자동차주가 해외 경쟁사보다 고평가된 것으로 나오기도 한다. 김한성 동부자산운용 리서치팀장은 “자동차 생산 부문의 기업가치를 세금 및 이자 지급 전 이익으로 나눈 EBITDA 배수가 도요타는 2.4배, 현대차는 2.5배”라며 “금융 부문을 제외하고 평가하면 도요타가 현대차보다 싸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단기적으론 환율이 변수

자동차주의 단기적인 흐름은 환율에 달렸다는 분석이다. 채희근 현대증권 산업재팀장은 “원·달러 환율 하락으로 수출시장 가격 경쟁력이 약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지난 몇 달간 자동차주 투자심리를 위축시킨 가장 큰 요인”이라며 “환율 하락세가 일단락돼야 주가 반등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배당 등 주주환원정책을 확대해야 자동차주의 매력이 높아질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 부사장은 “현대·기아차는 성장 속도가 느려지더라도 이익 규모는 안정적으로 유지할 것”이라며 “배당을 확대한다면 재평가받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