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 600인의 촉구 "경제민주화 공약 즉각 철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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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직 대학교수 150여명과 변호사, 문화예술인 등 우리 사회 지식인 600여명이 최근 국내 경제 상황을 1997년 외환위기 수준이라고 진단하고, 여야 대선 후보들이 경쟁적으로 쏟아내고 있는 ‘경제민주화’ 공약 전면 철회를 촉구하고 나섰다.
시민단체 ‘바른사회시민회의’를 주축으로 모인 이들은 13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나라를 걱정하는 지식인 600명 긴급 시국선언문’을 통해 “우리 기업들이 국제 경쟁력을 높일 전략을 짜야 할 절박한 시점에 각 대선주자 캠프에서 기업의 경제활동을 심각하게 위축시킬 수 있는 정책을 경제민주화라는 그럴듯한 상표를 붙여 무책임하게 쏟아내고 있다”며 “이 같은 득표용 즉흥 공약을 즉각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세계 경제 침체에 따른 제로(0) 성장, 수출 둔화, 채산성 악화, 가계부채 증가, 일자리 부족 등의 여파로 경제 여건이 어느 때보다 어려운 가운데 정치권의 대기업 규제로 기업 투자심리가 벌써부터 얼어붙고 있다”고 진단했다.
최근 시민단체 회원들과 전·현직 대학교수 등 학계 인사들이 경제민주화 공약의 입법·정책화에 반대 의사를 잇따라 밝힌 적은 있지만 변호사와 문화예술인까지 대거 나서 경제민주화와 관련한 핵심 정책 이슈에 대해 집단 의사를 밝힌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다.
"순환출자 금지하는 나라는 없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그동안 언론이나 심포지엄 등을 통해 대선주자들이 내세우는 경제민주화가 한국 사회의 양극화 문제를 풀기엔 부족하다는 것을 강력히 주장해왔다”며 “그러나 여야 정치권은 이를 아예 귀담아듣지 않았다”고 시국선언을 발표한 배경을 설명했다. 새누리당 박근혜, 민주통합당 문재인, 무소속 안철수 세 대선 후보는 똑같이 대기업(재벌) 폐해를 바로잡겠다며 경제민주화 공약에 공을 들이고 있다.
조 교수는 “경제민주화 공약 중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순환출자 금지와 출자총액제한제 부활 문제”라고 말했다. 신규 순환출자에 대한 세 후보 입장이 조금씩 다르고, 문 후보 혼자 출자총액제한제 부활을 주장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 전체 골격에선 세 후보 입장이 비슷비슷하다. 조 교수는 “세계적으로 순환출자를 금지하는 나라는 없다”며 “피라미드 및 순환출자 구조인 재벌의 조직구조를 한국만의 예외적인 현상으로 보고 만악(萬惡)의 근원인 것처럼 주장하는 것도 사실과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다. 계열사 간 내부거래를 통한 지배주주의 사익 추구 행위 등 재벌의 ‘반칙’은 막아야겠지만, 재벌의 조직 자체를 위법적인 것으로 보고 사전적인 행정 규제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김정호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는 “우리 경제가 성장하려면 영세기업이 중소기업이 되고, 중소기업이 중견기업, 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커 나갈 수 있는 성장판이 열려 있어야 하지만, 경제민주화는 큰 것(대기업)은 쪼개고 작은 것(영세기업)은 더 작게 만들자는 얘기”라며 “대기업과 영세기업 모두 미래성장을 위한 투자를 하지 않는다면 우리 경제의 미래는 없다”고 강조했다.
김종호 서울교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처럼 부존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국가에서 소기업 중심으로 경제성장을 이룩한 나라는 없다”며 “대선주자들은 중소기업만 보호·지원하면 경제가 살아나는 줄 알지만, 국제경쟁력을 갖춘 대기업이 지속적으로 해외시장을 개척해야 하는 게 우리나라의 운명”이라고 말했다.
이날 시국선언에는 이들 교수 외에도 조희문 인하대 교수, 허희영 한국항공대 교수, 김이석 시장경제제도연구소 부소장, 최창규 명지대 교수, 이훈구 전 연세대 교수, 권혁철 자유경제원 전략실장, 박대식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 등이 참여했다.
하헌형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