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10개월이면 사람이 태어납니다. 외환은행이 이제 ‘사고’를 쳐도 ‘속도위반’했다는 얘기는 안 나오겠네요.”

윤용로 외환은행장(사진)이 최근 임원회의에서 한 말이다. ‘탈(脫) 론스타’ 10개월째를 맞은 외환은행이 앞으로 가시적인 성과를 내놓겠다는 자신감을 내보인 것이다.

외환은행은 2003년 론스타가 인수한 후 줄곧 거래 고객이 줄었다. 지난 2월 하나금융지주에 편입되기 전까지 약 9년간 외환은행을 떠난 고객이 100만명에 달했다. 론스타가 자산 늘리기에 관심이 없었던 탓에 대출 영업에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맞추는 데만 급급했던 론스타는 외환은행의 자본을 늘리는 대신 위험 자산을 줄이는 방식을 택했다. 그 결과 만기 연장 등을 거부당한 고객들이 하나 둘 외환은행을 떠나기 시작했다.

윤 행장은 지난 2월 취임 직후 ‘잃어버린 고객 되찾기’에 주력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임직원들의 자세를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론스타 시절 현실 안주에 익숙해진 임직원들에게 공격적인 영업 마인드를 갖도록 독려했다. 윤 행장은 집무실에 전국 350여곳의 지점 위치를 표시한 대형 지도를 걸어 놓고 직접 방문을 시작했다. 지난 9년간 한 번도 행장 얼굴을 직접 본 적 없는 직원들을 만나 변화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방문한 곳은 형광펜으로 표시했고, 10개월 만에 거의 다 돌았다.

또 론스타 인수 당시 4%대에서 지난해 2%대로 반토막난 카드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지난 6월 ‘2X카드’를 출시하고 전사적인 마케팅을 시작했다. 2X카드는 출시 6개월 만에 약 60만장을 발급하며 올해 최고 히트 상품으로 떠올랐다.

이 같은 노력으로 지난 3월 758만명이던 고객은 10월 791만명으로 33만명가량 늘었다. 9년간 잃어버린 고객의 3분의 1을 10개월 만에 되찾아온 셈이다.

투자은행(IB) 부문과 해외 영업도 다시 강화하고 있다. 지난 7월 신설한 IB본부는 최근 삼성중공업과 한국남부발전이 제주 앞바다에서 추진 중인 1조원 규모 대형 해상 풍력발전 프로젝트의 금융 자문 및 주선기관 선정 사업을 따냈다. 다음달에는 10년 만에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에 해외 지점을 개설한다. 내년 중 터키 이스탄불, 인도 첸나이, 필리핀 클락 등에도 진출한다.

외환은행은 그러나 하나금융과의 화학적 결합이라는 숙제를 안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외환은행 노조가 2017년 하나은행과의 통합 전까지 막무가내식 ‘통합 반대’ 입장을 고수한다면 노사 갈등이 심화돼 과거의 명성을 되찾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