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운전 경력 5년의 A씨는 지난 여름 일을 계속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고객을 연결해주는 콜센터의 횡포 때문이다. “기사가 사정상 출동을 취소하면 벌금 1000원씩을 무는데, 이 돈을 모아 당일 가장 마지막에 나간 기사에게 몰아주는 게 관행이었어요. 그런데 어느날부터 콜센터가 이걸 다 가져가기로 했다더군요. 기사들 몫인데 항의 한번도 못했어요.”

A씨가 협동조합 설립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였다. 건당 20%씩 콜센터에 내는 수수료, 보험료, 벌금 등을 모아 여러 기사들이 창업을 하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틀로는 협동조합이 제격이었다. ‘1인1표’로 운영돼 기사들의 권익을 고스란히 지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리운전 외에도 협동조합에서 기회를 찾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프랜차이즈나 대기업에 대항해야 하는 빵집 치킨집 세탁소 등 영세 자영업자들이 대표적이다. 세무사와 법무사 등 전문가 그룹이 협동조합 전환을 타진하는 사례도 있다.

동네 상권에서 주목하는 협동조합 유망 업종은 무척 다양하다. 창업컨설턴트인 박균우 두레비즈니스 대표는 “동네 세탁소는 협동조합을 만들어 경쟁력을 높이는 데 가장 적합한 업종”이라며 “5명 이상이 힘을 합쳐 공동 세탁공장을 마련해 업무를 분장하면 서비스 종류와 속도 면에서 체인점을 압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가 제안하는 협동조합형 세탁소는 165㎡(50평) 이상 중대형 세탁공장을 마련, 조합원들이 이 공장에서 작업을 분담하는 방식이다. 수십년간 세탁소를 운영한 자영업주는 세탁과 수선 기술이 탁월해 세탁, 다림질, 수선, 배달 등으로 분업해 운영하면 서비스 속도와 가격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배후 가구가 몰린 지역에는 세탁물 수거와 배달을 위한 점포를 개설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대구 서구에서는 동네 빵집 5~6개 업소가 모여 협동조합 설립을 준비 중이다. 이들이 공동 개발한 브랜드 ‘서구맛빵’이 호응을 얻자 조합을 만들어 프랜차이즈에 대항하기로 한 것이다.

동네 슈퍼들의 움직임도 주목된다. 윤태용 F&B창업컨설팅 대표는 “과일, 야채, 정육, 공산식품 등으로 쪼개진 동네 영세 슈퍼들이 협동조합 형태로 뭉치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청소와 경비, 퀵서비스 등 각 분야 근로자들도 협동조합 설립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용역회사 등이 가져가는 몫을 출자금으로 돌리면 결국 조합원의 이익으로 돌아올 것이란 기대감이 크다.

협동조합 설립을 지원하는 재단법인 행복세상의 강승구 사무총장은 “조합원이 주인인 협동조합은 불황일 때 임금을 낮추는 등 신축적인 운영이 가능하다”며 “고용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근로자 협동조합이 늘어나면 일자리 문제에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협동조합은 경제적 약자에게만 유용한 것이 아니다. 박주희 협동조합연구소 연구원은 “세무사와 법무사 등 전문가 조직에도 협동조합은 적절한 틀이 될 수 있다”며 “로펌이나 컨설팅업체 등도 협동조합 전환 방법을 문의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공동으로 일을 얻고 수익을 나누는 데 협동조합이 유연한 조직 형태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강창동 유통전문기자/김유미 기자 cdkang@hankyung.com

■ 협동조합

상법상 영리법인과 민법상 비영리법인의 중간 형태다. 영리 추구형인 ‘(일반)협동조합’, 지역사회나 취약계층 공익사업이 목적인 ‘사회적협동조합’으로 나뉜다. 5인 이상 조합원을 모으면 금융업, 보험업을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