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이었다. 복지예산이 100조원에 육박하는데 왜 노인빈곤율은 세계 최고일까. 궁금증을 풀기 위해 복지예산을 들여다봤다. 의외로 경직성 예산이 많았다. 저소득층의 여건에 맞게 신축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여지는 별로 없었다.무한정 돈을 투입할 수도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재정건전성도 복지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돈은 제대로 흘러가고 있는 것일까. 새로운 복지수요가 점증하는데도 과거 개발경제 시대에 짜놓았던 일부 특수직 계층의 복지로 쏠리고 있었다. 공무원 군인이 대표적이었다. 이들의 연금이 국가재정에 부담을 주고 있는 구조를 손질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득권의 해체를 의미하는 것이다. 반론도 많았다. 연금도 복지이며, 공무원 군인도 국민이라는 주장이었다. 틀린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한정된 재원으로 모든 국민을 행복하게 만들 수 없다면 배분의 효율성, 형평성이라도 살려야 한다고 본다. 상대적으로 여건이 나은 계층이 국민 세금을 기반으로 하는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렇게 세대 내 가능한 재분배를 이뤄내야 미래 세대가 짊어질 부담도 줄어든다는 판단에 시리즈를 시작한다.
[기득권에 발목잡힌 복지제도] 50만명 특수직 연금 예산 20조…348만명 국민연금은 12조 8000억
대학 동기인 K씨와 L씨가 2010년 동시에 취직했다고 가정해보자. 회사원인 K씨는 국민연금에, 공무원인 L씨는 공무원연금에 각각 가입했다. 이들이 평생 같은 임금을 받고, 2039년 동시에 은퇴한다면 연금은 얼마나 차이가 날까.

두 사람이 65세가 되는 2049년부터 2070년까지 연금(사망 후 유족연금 포함)을 받는 것을 전제로 하면, K씨는 6377만원의 보험료를 내고 1억5124만원의 연금을 타게 된다. 이에 비해 공무원 L씨는 9876만원의 보험료를 내고 2억4725만원의 연금을 받게 된다. 연금에서 자신이 낸 보험료를 뺀 순연금액은 L씨(1억4849만원)가 국민연금 가입자 K씨(8747만원)보다 1.7배 많은 셈이다. 김상호 광주과학기술원 기초교육학부 교수가 최근 한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내용이다. 김 교수는 “공무원연금 가입자가 낸 돈보다 훨씬 많이 받아가는 것도 문제지만 순연금액이 고스란히 세금에서 나간다는 게 더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공무원 복지국가냐”

지난 9월 정부는 내년 복지예산이 97조원이라고 발표했다. 이 중 공적연금에 들어갈 돈은 33조1382억원에 달했다. 연금 수혜자가 348만명에 이르는 국민연금에는 12조80000억원이 들어간다. 하지만 50만명이 받는 특수직역 연금인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군인연금에는 20조원이 배정됐다. 빈곤개선 효과가 있는 기초생활보장과 취약계층지원 예산(10조3000억원)의 두 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3개 특수직역 연금 예산 증가액만 8820억원이었다. 전체 복지예산 증가분(4조5000억원)의 20%가량이 공무원과 교사 군인들에게 돌아간 셈이다. 예산안이 발표되자 “공무원 복지국가”란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항변을 하는 사람도 있다. 배정된 예산 전부가 아니라 거둬들인 연금보험료와 지급하는 연금의 차액만 정부가 부담하기 때문에 과도하다고 몰아붙이면 안 된다는 것.

◆사학연금도 미래 부담

하지만 누적적자와 앞으로 정부가 세금으로 메워야 할 연금 적자규모를 보면 문제가 달라진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김영주 새누리당 의원은 “정부가 2001년부터 2011년까지 공무원연금 적자를 메우기 위해 투입한 금액은 8조5323억원에 이른다”며 “고령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만큼 앞으로 공무원연금은 재정에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함정은 사학연금이 빠져 있다는 것. 공식적으로 국가가 지급해야 한다는 의무가 법에 명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학연금은 현재 10조원의 기금을 쌓아놓고 있어 단기적으로 문제는 없다. 그러나 2020년께 적자로 전환되고 2033년이 되면 한 해 동안 나가는 보험금이 들어오는 보험료보다 5조4000억원가량 많게 된다. 결국 사학연금 적자도 정부가 책임질 수밖에 없어 재정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전영준 한양대 금융경제학부 교수는 “사학연금도 20년 후 은퇴할 사람들의 수급권을 위해 서둘러 손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연금과의 형평성 논란

정부는 2009년 공무원연금제도를 손질했다. 지급률을 낮추고, 지급개시 연령도 기존 60세에서 새로 가입하는 사람부터 65세로 늦췄다. 또 보험료도 6%에서 7%로 올리기로 했다.

하지만 이 방안은 당시 많은 비판을 받았다. 재직기간 10년이 넘는 공무원은 연금이 줄어들지 않도록 철저히 기득권을 보호해줬기 때문이다. 또 신규 공무원연금 가입자의 소득대체율도 유족연금만 70%에서 60%로 낮추는 데 그쳤다. 소득대체율은 퇴직 전 받은 평균 임금 대비 연금의 비율이다. 앞서 소득대체율을 60%에서 40%로 끌어내려 고갈시기를 2060년으로 늦춰놓은 국민연금과의 형평성 논란도 제기됐다. 때문에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당시 “연금개혁안은 재정 안정은 물론 국민연금과의 형평성 제고 측면에서 모두 미흡하다”며 추가적인 개혁조치를 촉구하기도 했다.

효과도 크지 않았다. 2010년 보험료 인상 등으로 적자가 일시적으로 감소했지만 2011년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장기적으로는 더 위험하다. 기대수명 연장으로 보험료 인상과 지급 연령을 늦춘 효과가 모두 사라졌기 때문이다. 김상호 교수는 “국민연금보다 직역 연금이 더 문제가 되는 이유는 소득대체율 때문”이라며 “국민연금은 40% 수준이지만 특수직역 연금은 여전히 70%대에 이르러 재정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에 소득재분배 기능이 전혀 없다는 점도 문제로 지목되고 있다. 국민연금은 소득이 적은 사람일수록 더 많은 혜택을 보는 구조지만, 공무원연금 등은 연금액이 소득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