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 불법 감금?…어느날 갑자기 정신병원에 갇혔다
“평생 그곳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거라 생각했어요.” 작년 8월 경기도의 한 정신병원에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 감금됐다 올 1월 가까스로 빠져나온 강모씨(49)는 갇혀 있었던 여섯 달을 생각하면 지금도 온몸이 떨린다고 했다.

강씨는 경기도에서 50만㎡ 규모의 공원묘지를 운영하는 S재단 이사(理事)다. 2남2녀 중 장남인 강씨는 10여년 전부터 큰누나 강모씨(57)와 함께 모친이 이사장으로 있는 S재단의 실질적인 운영을 도맡아 왔다. 작년 8월10일 오후 5시, 평소처럼 재단 업무를 보던 강씨의 사무실에 건장한 체구의 남자 네 명이 갑자기 들이닥쳤다. ‘사설 응급환자 이송단’이었다. 이들은 다짜고짜 강씨에게 수갑을 채우고 응급차에 태워 경기도 용인의 D정신병원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 ‘악몽 같은 6개월’이 시작됐다.

멀쩡한 강씨를 정신병원에 ‘강제입원’시킨 사람은 그의 큰누나였다. 이유는 ‘재산 다툼’. 남매는 2009년 무렵부터 재단 경영권을 두고 갈등을 빚어왔는데, 상황이 불리해진 큰누나가 급기야 남동생을 알코올 중독에 빠진 ‘한정치산자(재산의 관리·처분이 법에 의해 제한되는 사람)’로 몰았던 것이다. 강씨는 병원에 갇혀 있은 지 6일 만에 ‘입원 치료를 받을 필요가 없는 상태’라는 정신감정 결과를 받았지만 퇴원할 수 없었다. ‘재발할 수 있다’며 큰누나가 퇴원을 반대했기 때문. 정신보건법상 ‘비자발적’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한 경우 보호자 동의 없이는 퇴원이 불가능하다.

“일단 (병원에) 들어가면 ‘나는 미치지 않았다’고 아무리 소리쳐봤자 소용이 없어요. 전화·편지는 어림도 없고요. 하루는 담당의에게 ‘외부로 편지 좀 부쳐달라’고 부탁하니까 ‘당신 이러면 영원히 밖으로 못 나갈 수도 있어’라고 합디다.”

이후 강씨는 충남 서천·인천·경기 고양·서울 등지의 정신병원 4곳으로 끌려다니며 감금생활을 해오다, 멀쩡한데도 입원해 있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한 의사의 도움으로 지난 1월27일 병원을 나왔다. 입원 171일 만이었다. 강씨 큰누나는 불법 감금 혐의로 검찰에 기소돼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재산상속·이혼·외도 등의 문제로 가족 사이에서 다툼이 일자, 질환 유무와 관계없이 남편·아내·형·동생 등을 ‘정신병자’로 몰아 정신병원에 강제입원시키는 사례가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2010년 7월부터 작년 6월까지 1년 동안에만 ‘정신병원에 불법 감금당했다’는 진정이 1250건 접수됐다. 하루 3.4명꼴이다.

○하루 3명꼴로 ‘감금당했다’며 진정

치료? 불법 감금?…어느날 갑자기 정신병원에 갇혔다
하루 평균 3명 이상의 ‘정상인’이 강제로 정신병원에 감금됐다며 진정을 내는 ‘기막힌’ 현실은 가족들이 자기 이익을 위해 정신보건법을 악용한 데서 비롯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정신질환자 강제입원의 근거를 마련한 정신보건법 제24조는 ‘보호의무자 두 사람이 동의하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입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경우에 한해 정신질환자를 (강제)입원시킬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자신의 병을 제대로 알기 어려울 정도로 중증 질환을 앓고 있거나, 자살·폭력 등의 위험이 있는 정신질환자는 본인 동의가 없어도 입원 및 강제치료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이 법의 맹점은 본인의 의사가 전혀 반영되지 않는 입원 절차에만 있는 게 아니다. 입원환자의 상태를 가장 잘 아는 해당병원 전문의가 퇴원명령을 내리더라도 가족이 반대하면 퇴원할 수 없게 돼 있다. 강제입원시킨 가족에게 퇴원의 최종 결정권까지 주고 있는 것이다.

강제입원 규정이 ‘치료를 위한 것이 아닌, 불법 감금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논란이 일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10명 중 8명은 ‘강제입원’…‘입원 브로커’ 성행

국내에 입원실을 갖춘 정신의료기관은 666곳, 이곳에 입원해 있는 환자는 모두 7만8637명이다. 이 중 자의(自意)로 입원한 환자는 21.4%(작년 말 기준·보건복지부 통계)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배우자, 직계존속 등 보호의무자에 의해 가족이 없는 경우엔 시장·군수·구청장의 의뢰로 강제입원된 사람들이다. 입원환자 5명 중 4명은 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끌려온 셈이다. 영국 독일 이탈리아 등 서구 국가들은 자의입원 비율이 80%에 달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강제입원이 쉽다 보니 이를 악용하는 사례도 많다. 김모씨(61)는 지난해 2월 부인의 손에 강제로 이끌려 3개월간 정신병원에 강제입원돼 있었다. 부인이 10여년 전부터 부부싸움이 잦아지자, 아들을 설득해 구급차를 불러 김씨를 강제입원시킨 것이었다. 병명은 ‘사이코패스(반사회적 인격장애)’. 김씨는 정신병원에 3개월 동안 있다 부인을 설득한 끝에 지난 5월 퇴원했다. 김씨는 퇴원 직후 진단 결과 ‘정상’ 판정을 받았다. 부인이 ‘생사람을 잡는’ 음모를 꾸몄고, 판단을 잘못한 의사가 이를 도운 셈이다.

강제입원하는 환자들은 대부분 경찰차나 응급환자 이송단의 응급차를 타고 병원에 끌려온다. 병원에 도착한 다음부터는 “나는 정신병자가 아니다”고 아무리 소리쳐봤자 소용없다. 여기서는 병원 전문의의 진단이 가장 절대적이기 때문. 대부분의 정신병원은 환자를 일단 입원시킨 뒤에야 정신 이상 여부를 검사한다.

온전한 사람을 정신질환자로 몰아 병원에 강제입원시키는 일이 끊이지 않다 보니, 그 틈을 노리고 정신병원 강제입원을 알선하는 브로커까지 성행하고 있다. 지난 6월 서울경찰청은 자신의 병원에 환자를 몰아주는 대가로 사설 응급환자 이송단에 3년간 4억원어치의 금품을 준 정신·요양병원 ‘환자유치담당’ 직원과 이 돈을 받고 해당병원에 환자를 이송한 응급환자 이송단 직원들을 적발했다. 강제입원에 따른 피해자가 속출하다 보니 병원에서 ‘탈출’하는 방법을 교환하는 모임까지 생겼다. 정백향 정신병원피해자 인권찾기모임 대표는 “하루에도 3~4통의 전화가 걸려와 강제입원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묻는다”고 전했다.

○평균 6개월 이상 ‘감금’…퇴원율은 ‘3%’

전문가들은 국내 비(非)자의 입원비율이 높은 원인으로 △정신질환자는 치료가 필요한지 여부를 스스로 판단할 수 없다고 여기는 의사·가족들의 편견 △치료 결정에 대한 가족의 개입을 당연시하는 가족주의적 문화 △의사의 ‘권위’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경향 등을 꼽는다. 서미경 경상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입원된 환자를 조사해보면 입원 치료가 필요할 만큼 증상이 심각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고 말했다.

일단 정신병원에 입원하면 환자가 ‘영원히 빠져나갈 수 없을 것 같다’고 느낄 만큼 퇴원은 어렵다. 우리나라 정신의료기관 입원환자들의 평균 입원기간은 170일(2011년 기준·복지부 통계). 정신요양원까지 포함하면 600여일이다. 영국 독일 이탈리아 등 서구 국가들과 비교하면 수십배 더 길다. 정신보건법상 입원환자들은 6개월마다 각 지방자치단체 산하 정신보건심판위원회에서 퇴원 심사를 받는다. 그러나 이 심사를 통해 퇴원이 허락된 경우는 약 3%(인권위 조사)에 불과하다. 퇴원 심사 과정에서 가족들이 강경하게 반대해 퇴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 서 교수는 “퇴원 심사 과정에선 환자 상태를 체크하는 것보다 가족들이 퇴원을 원하는지 여부만 따질 때가 많다”고 말했다.

퇴원명령이 내려져도 가족들이 ‘재발 방지’를 이유로 병원 문 밖에서 다른 정신병원 차를 대기시켰다가 다시 병원에 입원시키는 경우도 허다하다. 권오용 한국정신장애연대 사무총장은 “가족 등 보호의무자가 환자를 입원시키고 연락을 끊는 등 의도적으로 돌보기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일부 병원에서 부당하게 환자를 강제입원시킨다는 민원이 끊임없이 제기돼온 것은 사실”이라고 시인했다.

하헌형/이지훈 기자 hhh@hankyung.com